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퇴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군부의 반기였다.11일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궁 앞에서 15만 명으로 불어난 반정부 시위대가 국가경비대 저격병의 총격으로 12명이 죽고 110명이 부상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군이 마침내 차베스 대통령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다.
육ㆍ해ㆍ공군에서 명령불복종 사태가 발생했고 사태를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한 군부는 육군참모총장 등 장성 3명이 대통령궁으로 차베스를 찾아가 하야를 촉구했다.
군의 외면은 2월 고위 장교 4명이 차베스의 하야를 요구한 이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발전해왔다. 군에서는 이미 이 같은 사태를 예견한 듯 총파업 이틀째인 10일 저녁부터 육군 장성들이 대통령 하야에 관한 논의를 했으며 이날 밤 대통령 가족들은 비행기편으로 모처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베스의 하야가 공식 거론된 것은 5일. 노조와 재계는 국가 비상사태와 불안고조를 지적하면서 민주개혁 10개 항을 발표하고 하야를 촉구했다. 이미 이때 차베스는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조차 없는 상태였다.
9일 최대 단위노조인 국영석유회사(PDVSA) 노조가 차베스가 측근들로 채운 새 이사진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24시간 총파업에 들어갔다. 총파업에는 노조연맹(CTV)은 물론 상공인연합회(페데카마라스)와 일부 언론도 가담해 그의 독단과 경제실정을 성토했다.
차베스는 2000년 5월 집권 이후 정부와 국영 기업 요직에 자신과 가까운 군부 출신 인사와 장교들을 임명하면서 독단과 경제실정으로 국민적 불만의 싹을 키워왔다.
경제 악화, 원유가 하락에 따른 재정적자 심화, 범죄 증가 등으로 집권 기반인 노동자ㆍ빈민층을 포함해 각계 각층에서 ‘집권 이후 권력 기반을 다진 외에는 한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론은 나빠졌다. 재정 수입의 40%를 차지하는 석유의 국제가격 하락으로 환율방어에도 실패해 볼리바르화에 대한 평가절하까지 단행해야 했다.
특히 집권 볼리바르혁명운동(MVR)이 대통령에게 법률제정권을 부여한 것을 빌미로 사실상의 토지 무상 몰수 등 사회주의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 사상 처음으로 자본가 파업이 일어나는 등 중산층 이상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했다.
사회개혁 작업에 군을 동원해 사병화함으로써 군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특히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비판하면서 미국과 줄곧 마찰을 빚었다. 여기에 작년 10월 "미국이 테러에 테러로 맞서고 있다"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공개비판한 후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한 것도 군부가 등을 돌린 이유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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