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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한국사람 3분의 1 가야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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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한국사람 3분의 1 가야인의 후손이다"

입력
2002.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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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김태식 지음/푸른역사 발행ㆍ1ㆍ3권/2만9,800원/2권 2만8,800원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에 익숙한 우리에게 가야는 참 애매한 나라다. 백제와 신라의 틈에 낀 약소국.

제대로 된 문명이 있었는지, 국력과 백성의 삶의 수준은 또 어땠는지 일반인들은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렇게 배웠고 개인적 관심을 유발할 정도의 기본적 지식도 없다.

가야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태식(金泰植ㆍ46)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복원한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를 냈다.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낸 가야 개설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3권으로 구성돼있다.

1권은 가야라는 정치체제의 태동 전개 멸망과정을, 2권은 가야의 생활사를, 3권은 여러 개로 쪼개져있던 가야 각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원색 편집에 사진, 지도 등 도판 400장을 실어 보기에도 좋다.

저자는 가야가 삼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 문명을 갖췄다고 주장한다.

작은 나라의 연맹체이긴 해도 갑옷과 말 투구가 가야 땅에서 가장 많이 나왔고 말 철갑의 유일한 실물이 가야 영토인 경남 함안에서 출토됐다는 사실을 들어 중앙집권적인 삼국에 비해 무력 또한 뒤지지 않았음을 입증하려 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가야를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반열에 올리는 사국(四國)시대론을 편다.

저자는 우선 삼국이 한반도 영토를 셋으로 나눠 지탱한 기간은 가야가 멸망한 562년부터 백제가 망한 660년까지로 98년에 불과하며 그 이전에는 사국이 경합했다고 말한다.

가야 땅이 경상남북도 낙동강 유역과 그 서쪽 일대를 포함할 뿐 아니라 가장 넓었을 때는 전라남북도 동부까지 포괄, 백제나 신라 영토에 버금갔다는 사실도 일러준다.

현재 5,000만 남한 인구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가야의 후예일 것이라는 주장까지 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가 역사에서 왜곡된 이유로 저자는 ‘삼국시대 논리’와 임나일본부설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을 꼽는다.

삼국시대 논리란 김부식(金富植)의 삼국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대 한반도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나라로 국한, 가야가 설 자리를 봉쇄했다.

임나일본부설은 369년부터 562년까지 왜 왕권이 가야지역을 정벌,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백제와 신라까지 경영했다는 주장.

이 때문에 가야는 힘없는 나라, 통치를 받은 나라라는 오해를 받아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책은 400년 무렵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하를 기점으로 김해 가락국(금관가야) 중심의 전기가야연맹체와, 고령 대가야를 중심으로 하는 후기가야연맹체로 각각 나눈 뒤 가락국과 대가야를 중심으로 30여개 가야 소국의 역사를 소개한다.

어로와 농업에 종사한 가야 사람의 경제활동과, 순장 등 사회풍습, 귀족의 귀금속 선호주의 등도 적고 있다.

대가야의 월광태자(月光太子)를 비롯한 가야 사람 이야기도 나온다.

월광태자는 대가야 이뇌왕(異腦王)과 신라 법흥왕(法興王) 가계의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대가야가 나중에 백제와 가까워지자 신라로 망명한다.

신라는 대가야를 공격하고 그를 대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내세운다. 바로 도설지왕(道設智王)이다.

저자는 월이나 도솔이 모두 달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월광태자를 도설지와 동일인으로 추정한다.

신라의 삼국통일 일등 공신도 가야 출신이다. 김유신(金庾信)은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이고 나당연합시 미묘한 외교문서를 번역, 작성한 강 수(强 首) 역시 금관가야 출신이다.

가야산 해인사가 대가야 시조 정견모주(正見母主)를 모시는 사당을 확장한 것이라는 흥미로운 주장도 나온다.

저자는 문헌사료가 모자라 연구와 저술에 어려움이 컸으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토기 등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서기를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조작과 윤색은 심하지만 가야에 관한 기록이 풍부해서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책에 대해 저자가 식민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가야사를 지나치게 부풀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 나오고 있다. 이런 문제는 학계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다만 그 같은 지적이 타당하더라도 가야사를 복원하려 한 점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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