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거리. 매캐한 포연과 시신에서 뿜어 나오는 역한 냄새. 인적이 끊긴 거리를 나뒹구는 시체들과 가족의 시신을 찾아 폐허 더미를 뒤지는 여인들. 끝없이 이어지는 살인, 약탈….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무장대원 사이의 치열한 시가전이 끝난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도시들의 모습이다. 파괴된 건물과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상점의 물품들 사이로 방치돼 있는 시체들을 헤치며 유족들은 오열하고 있다.
식수는 제대로 공급이 안 되고 물건을 살 수도 없으며 학교에는 물론 갈 수도 없다. 출입 통제로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보도진은 “전쟁은 양측 지도자들의 선언을 지나 이미 현재진행형”이라고 전하고 있다.
#1. 죽음의 도시 예닌
압둘라 와샤히(20)의 집이 이스라엘 헬기의 폭격을 받은 것은 6일 오후 2시. 순식간에 허름한 벽돌 벽이 무너지면서 동생 무니르(17)가 쓰러졌다. 앰뷸런스를 부르려 했지만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가까스로 전화를 건 예닌 병원에선 “군인들의 저지로 출동할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갑자기 어머니가 창문 가로 뛰어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이 어머니의 머리를 관통했다. 2시간 뒤 어머니가, 8시간 뒤 동생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지만 가족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8일 오전 이스라엘 군의 위협에 집에서 쫓겨 나올때까지 가족들은 시신을 안고 오열했다. “속옷 차림으로 끌려 다니며 보안 검색을 받았어요. 아직도 지난 6일 간의 공포가 믿겨지지 않는다”며 압둘라는 넋을 잃었다.
1만 3,000여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소개된 예닌 난민촌은 폐허 그 자체다. 혹시 남았을지 모를 저격수와 부비트랩을 우려한 이스라엘 군은 아예 의심이 있는 지역을 불도저로 밀고 있다.
오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여섯 아이의 집이 있던 자리를 망연히 쳐다보던 아메드 자라다트는 10일 “확성기로 집을 떠나라는 경고가 들려 집을 나왔을 뿐”이라며 말을 잊었다. 현재 예닌 난민촌은 방치된 시체들로 전염병 창궐이 우려되고 있으며 수도 공급이 끊겨 주민들은 하수를 가라앉혀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도 할 말은 있다. 이스라엘 병사 야론 젤쳐는 “예닌에는 과격 테러분자들이 가득하다. 그들의 폭탄은 하수구에도 여성의 지갑 속에도 숨겨져 있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고 항변했다.
#2. 폐허를 뒤지는 유족들
10일 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 치열했던 전투가 끝나자 닷새 동안 건물 지하에 숨어 지내다 나온 네 명의 여인들이 폐허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시신을 찾다 지친 여인들은 남편과 아들의 생사를 묻기 위해 알 베이크 사원으로 향했다.
사원 뒤편에는 시체 더미가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제때 피하지 못한 7명의 무장대원의 시신이라고 했다. “전에 살았던 도시가 아닌 것 같다”고 한 여인이 읊조렸다.
한 지방 관리는 “지난 일주일 동안 60명이 죽고 100여 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구조팀은 여전히 폐허 더미에서 시신을 찾고 있다. 의사인 타리프 압델하크라는 “지난 주까지 나는 공중보건 전문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공중의 죽음에 대해 좀 더 많이 알 뿐”이라고 조소했다.
9일 밤 이스라엘 헬리콥터의 대규모 폭격이 있은 후, 10일 오전 건물 잔해 밑에서 14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일부는 갈비뼈가 사라진 상태였다. 굶주린 개들이 씹어 먹었다고들 했다.
#3. 통제선 밖 사람들
아랍계 이스라엘인 살림 다우드(28)는 10일 예닌 인근의 무케이베 마을 한 가옥의 지붕에 올라 멀리 연기가 피어 오르는 예닌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틀 전에 통화했던 이모들과 이모부들이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오열한 그는 통제선 통과를 시도하다 군인들의 살벌한 제지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군은 작전 종료 후에도 구호팀 대표와 의료진, 앰뷸런스의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검문소에서 진입 허가를 기다리고 있던 유엔 구호기구(UNRWA) 한 관계자는 “거리에 흩어져 치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과 음식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출입을 금지당한 CNN의 한 기자는 "저안에서 최소한 14명의 이스라엘군과 2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숨진 걸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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