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백상(百相) 장기영(張基榮) 한국일보 창간 발행인의 25주기 추모행사가 11일 오전 11시 경기 하남시 창우동 검단산 고인의 묘소에서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을 비롯한 유족과 친지,각계인사,전·현직 사우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추모식에서 시인 이근배(한국시인협회 회장)씨는 "선생은 이 겨레가 가장 험난했던 시기에 오셔서 '한국일보'를 창간,언론사의 새 금자탑을 세우고 조국의 근대화를 점화하는 등 한사람의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위대한 역사르 이룩했다"고 추모시를 낭송했다.
추모식장에서는 고인의 생전활동 모습들을 담은 사진전과 "나의 뼈는 금융인이요,몸은 체육인이며,피는 언론인이다"등 고인의 말을 서예에 담은 백상어록(百想語錄)전시회도 열렸다.
참배객들에게는 고인이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분들의 시각을 통해 언론,체육 정·관계가 얼쳐 한국 현대사에 고인이 남긴 큰 족적과 인품을 다은 추모문집 '후(後) 백인백상(百人百想)'이 배부됐다.
이날 행사에는 미관식 전 문교부 장관,이원홍 전 문공부장관,남재희 전 노동부장관,박병윤 민주당의원 등이 참석했으며,최규하 전 대통령,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신문 사장 등이 조화를 보내 고인의 유덕을 기렸다.
고찬유기자
■ 景 慕 詩
더 높아지는 산이여, 더 깊어가는 강이여
-故 백상 장기영 선생 25주기에
이근배 한국시인협회장
이 나라의 산천에
다시 봄빛은 찾아와서
눈부시게 꽃 수를 놓고 있습니다.
스물 다섯 해 전 오늘
이 나라, 겨레 위해
산같이 쌓인 일 못 다하시고
백상 선생, 이 봄빛 따라
먼 길 떠나셨습니다.
산에다 비기겠습니까
강에다 비기겠습니까
선생의 한 생애는 곧
우리시대의 한 역사이며
선생이 걸어오신 길은
이 겨레의 앞날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어찌 저희 어린 후학들이
그 높고 크고 넓었던 사상이며
한 시대를 들어올린 대역사며
국운을 융성시킨 치적들을
모두 헤아릴 수 있겠으며
만의 하나라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선생은 이 겨레가 가장 험난했던 시대에 오셔서
한 사람의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참으로 위대한 새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금융인으로, 언론인으로, 체육인으로, 경제인으로, 정치인으로
항상 앞서서 개척의 땀을 흘리셨고
항상 정상 자리에 우뚝 서시어
생각하시는 일은 곧 실천하셨고
실천하시는 일은 곧 성공시키셨습니다.
전쟁이 지나간 폐허 위에서
‘한국일보’를 창간, 이 나라 언론사의 새 금자탑을 세우셨으며
저 보릿고개로 허릿띠를 조이던 시절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취임,
누천년 찌들었던 가난과 굶주림을 몰아내고
조국의 근대화를 점화시키셨습니다.
IOC 위원으로는 체육 한국의 위상을 지구촌에 높이 띄워
서울 올림픽 성공의 주춧돌을 놓으셨습니다.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으로
4반세기 닫혔던 통일의 빗장을 열기 위해
북녘땅에 첫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아니 선생은 대시인이셨습니다.
붓을 들면 활화산 같은 정론이
시심을 타고 넘쳐 흘렀고
‘한국일보’는 그 맨 앞 얼굴에
365일 시를 실어 읽는 이들의 마음을 맑게 씻어 주었습니다.
“신문기자는 시인이라야 한다
편집기자는 시를 써야 한다
신문제목 하나 하나가 시다”
선생의 이 말씀만으로도
이 땅의 신문은 시의 신문이 되고
이 나라는 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누가 그 산의 높이를 다 우러르겠습니까
누가 그 강의 깊이를 다 짚어 보겠습니까
저희들 아직도 눈 못뜨고 떠돌며
황사바람같이 어지러운 현실이기에
선생의 크신 걸음, 크신 가르침
더욱 간절하고 빈자리가 너무 넓습니다
백세의 큰 스승이시어
부디 다시 오시어 이 땅의 어둠 밝히는
새 등불 걸어주소서
아아 선생은 해가 갈수록
더욱 높아지는 산입니다
달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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