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있는 교육’을 표방하고 이번 학기부터 실시된 일본의 국공립 초ㆍ중ㆍ고교 완전 주5일제 수업과 신학습 지도요령(교육과정)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일본의 국공립 초ㆍ중ㆍ고교는 4월 1일부터 토요일도 쉬는 주5일제 수업을 시행하고 있다. 또 1980년대 초부터 추진해 온 ‘여유있는 교육’을 집대성한 신학습 지도요령이 우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적용됐고, 고교도 2003년 4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학생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정서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주5일 수업과 신학습 지도요령으로 초ㆍ중ㆍ고 모두 수업 시간이 30%가량 줄어들고 교과서가 쉽고 얇아졌다. 대신 지식의 활용과 현장체험 학습을 강조하는 학교 재량의 종합학습시간(초ㆍ중)과 학교설정과목(고교) 신설이 허용됐다.
그러나 학력 저하와 가정부담 증가, 학력의 빈부격차 확대 등을 우려하는 학교와 학부모들의 반대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수업료가 비싼 명문 사립학교들은 주5일제를 수용하지 않아 국공립과의 학력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올해 사립 초ㆍ중ㆍ고 학교설명회가 어느 해보다 붐볐고, 상장한 대형 유명학원들의 주가가 치솟는 등 학력저하에 대한 우려는 심각하다. 또 완전 주5일제 근무를 하는 기업이 33.6%에 불과하고 대부분 맞벌이인 일본의 학부모들이 토요일 집에서 학생을 챙길 여유가 없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래저래 가정부담이 늘어나 빈부격차에 따른 학력 양극화가 커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언론들의 여론조사에서도 대개 50% 이상이 주5일 수업과 ‘여유있는 교육’에 반대하고 있으며, 학력저하와 공사립 격차 및 학원비 부담 등이 반대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다. 학교는 학교대로 종합학습시간과 학교설정과목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지자체와 학교에서는 학력을 보충할 수 있는 부교재 작성을 검토하거나 선배들의 구 교과서를 보관해두는 곳도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와 혼란으로 일본 문부과학성은 결국 신학습 지도요령이 “학습목표의 상한선이 아니라 최저선”이라며 우열반 편성과 방과후 보충심화학습을 권고하는 땜질식 보완처방을 내렸다.
기본 교과목에 20명 정도의 소수 학급 편성과 교과담임제 도입, 개인별 학습능력에 따라 세분화한 우열반 도입, 보충수업과 독서회 실시, 숙제 늘리기 등을 학교가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신학습 지도요령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여유있는 교육’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결국 문부과학성의 방향전환을 시사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내세우는 구조개혁 노선에는 ‘사회 전체의 경쟁원리 도입과 경쟁강화’ 등 일본 국가경쟁력 강화가 하나의 화두로 돼 있다. 1980년대의 지나친 경쟁과 주입식 교육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여유있는 교육 노선’은 이런 사회분위기 변화와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일본 교육계에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재원만 지원하고 운영은 교사와 학부모가 맡는 ‘국공립 민영학교’ 설립 등을 통해 근본적으로 관이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낡은 철학을 배제해야 한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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