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나온 미국 영화 중에 데미 무어가 주연한 ‘지아이 제인’이란 작품이 있다.한 여군이 특수부대원 양성을 위한 지옥훈련에 자원하여 극복해가는 과정을 워싱턴 정가의 정치적 음모와 배합하여 전개한 픽션이다.
데미 무어가 아니었다면 이름도 없이 극장가를 며칠 맴돌다가 사라졌을 할리우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여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원의원이 이런 말을 한다.
“인기가 올라가 유명해지면 모든 것을 용서받게 되거든.”
■ 요새 민주당 대선에서 세차게 부는 노무현 돌풍을 보며 이 말이 생각난다.
이인제 후보가 거의 흠집내기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하며 소위 그의 대세론에 방풍벽을 쳐 봤지만 바람을 막을 수가 없다. 요원의 불길에 양동이로 물을 붓는 꼴이다.
이 후보의 부정적 선거 운동방식이 노 후보의 인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 후보가 멋있는 비전과 좋은 정책을 내건다 해도 그 바람을 재울 수가 없어 보인다.
■ 10년전 미국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빌 클린턴은 경선을 시작하기 전 노무현의 지명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시골 주지사였다.
그가 도전해야 할 조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의 승리로 80%대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대부분 언론인들이 부시 대통령의 인기를 난공불락의 성으로 비유하며 재미없는 선거를 예측했다.
그러나 예비선거를 통해 클린턴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스캔들도 그의 길을 막지 못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현역대통령의 선거진영인가 싶을 정도로 부시는 인기 앞에 붕괴됐다.
■ 인기란 이렇게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선거를 하기 전에 과거의 자료를 근거로 제시되는 시나리오 대세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인제 대세론이 존재했던 것은 5년전 그가 얻은 500만표와 그 표가 초래한 정치적 역학구도의 결과다.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나라당 경선이 끝날 때 쯤이면 오히려 노무현 대세론이 록인(lock-in)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본선에서 그의 성공은 불확실하지만 변화의 뇌관을 때린 것만은 분명하다.
/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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