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 테러전을 시작한 후 가장 빈번하게 언론에 등장하는 각료는 단연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다. 그는 칠순을 앞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일정이 없는 경우 빠짐없이 국방부 기자실에 나타나 아프간 전황을 브리핑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가끔씩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이나 토미 프랭크스 중부사령관 등을 대동하기도 하지만 웬만한 질문은 본인이 직접 답변하곤 한다. 민간인 출신 빅토리아 클라크라는 여성이 공식 대변인이지만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언론을 기피하지 않는데다 해박한 군사지식을 바탕으로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 럼스펠드 장관을 사실상의 대변인으로 여길 정도다.
바로 그 럼스펠드 장관이 10일 중견언론인 모임인 ‘전미 신문편집인협회’에 불려나가 혼이 났다.
이 자리에서 편집인들은 “아프간전 초기에 종군기자들의 전투현장 접근을 차단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지적하고 “이는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는 없다’ 등을 비롯해 비밀 준수를 최고의 덕목으로 설파한 이른바 ‘럼스펠드 규칙’이 초래한 비극적 결과”라고 질타했다. 또한 대 테러전에 대한 국제여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국방부 내에 신설하려 했던 전략영향사무국(OSI)도 도마에 올랐다.
이에 대해 럼스펠드 장관은 “아프간전 초기에 미군은 매우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었다”고 전제하고 “기자들의 안위를 위해 취한 당연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간 기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지는 못했을지언정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고 받아넘겼다.
럼스펠드 장관이 브리핑 때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는 통상 기자회견때 “알고 있어 말하겠다” “알고 있지만 말 못한다” “모른다” 등 3가지 패턴의 화법을 구사한다. 그가 알고 있지만 말 못하는 경우는 작전방향이나 정보사항 등에 한정된다. 때문에 국방부 기자들은 그가 “모른다”고 할 때는 정말 모르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추가질문을 안 하는 게 관례다.
럼스펠드 장관의 이 같은 자세는 공직자와 기자들 간의 신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윤승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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