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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소비자운동가 송보경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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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소비자운동가 송보경교수

입력
2002.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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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100만원만 쓰는 삶. 최근 여유가 조금 생겨서 200만원. 아파트는 강남(논현동)이지만 20년 동안 20평.어떤 한도 내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통쾌하게 산다.

100만원, 200만원에, 그리고 20평에 맞추어 사는 삶은 일생을 통해 강박적으로 반복된다. 이런 독특한 삶을 사는 송보경 교수를 바라보는 것은 흥미롭다.

6ㆍ25 전쟁때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와 지금까지 같이 있다. 오랫동안 참으로 묘하게 산다. 마치 모르는 두 사람이 한 집에 사는 것처럼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딸과 가까이 있을 수 없었다. 홀로 된 어머니는 교회에서 안정을 찾는다. 일이 끝나면 교회로 간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딸과 거리를 두었다.

그래도 친할머니 사랑은 한껏 받았다. 하지만 원한 것은 아니다. 할머니가 신을 신으시면 도망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떤 집 잔치에 끌려가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그게 거추장스럽고 귀찮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집을 잘 찾아와서 용하다’ 고 칭찬(?)을 하시곤했다. 손녀딸을 ‘어리어리하다’(똑부러지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순둥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본래 ‘어리어리’ 하다기보다는 무엇에 쫓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성격도 넉넉하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집은 아지트였다. 아무리 친구들을 데려와도 가족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단짝인 다섯 명의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늘 집에 모였다.

매일 늦게까지 숙제하고 저녁까지 해결했다. 친구와 학교가 어머니와 가정을 대신했다.

이화여고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합리적인 성격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사는 삶은 가정보다는 시민단체와 함께 사는 지금 모습의 원형이다.

어머니는 딸에게 거리를 둔 대신 어떤 간섭도 개입도 하지 않았다. 같이 살면서도 의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너무나도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외출했다 돌아와도 인사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20대 후반에 어머니의 기대를 끊어 버렸다. 지금은 딸이 어머니와 거리를 둔다. 정서적으로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다.

거리는 유지하나 할 도리는 철저히 한다. 초등학교 때 어머님 생신에 당시로서는 비싼 내복을 챙겨 드렸다. 칠순잔치는 성대하게 치렀다.

정서적으로 친한 좋은 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예의바른 며느리처럼 모신다.

그렇지만 지금도 어머니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팔순 노모는 딸의 소원인 오디오를 구입하라고 모아두신 1,000만 원을 건네 주셨다.

원래부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왔다. 과목마다 성적 차가 뚜렷하다. 철학이나 문학 점수는 높지만 경제학 점수는 낮다.

소비자 운동을 하는 사람이 경제학 점수가 낮은 것이 의아하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을 위한 경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불공정 행위는 다르다. 시민을 위한 경제이기에 철저히 연구한다.

교수로써 깐깐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휴강이 없고 낙제점수를 잘 주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용서 못한다. 대리 출석은 낙제를 각오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문제는 가차없이 공격한다.

자몽 사건으로 미국 정부와 충돌한 적이 있다.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던 미국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미국 정부. 거짓말. 그것은 절대 용서 못한다. 아무리 상대가 미국이라도.

모든 부분에서 깐깐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몇 가지만 지켜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터뷰에도 조금의 주저함이나 꾸밈이 없다. 시원시원하고 긍정적이다. 이기심이나 개인을 위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맑은 성격은 이유가 있다.

제한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바로 100만원에 만족하는 삶이다. 기대를 낮추어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를 줄인다.

무게를 가볍게 만들면 일의 효율성을 최대화 시킬 수 있다. 그 범위 내에서는 마음 편하게 멋을 부리고 산다.

이런 전략은 소비자운동에 유익하다. 이슈화할 수 있는 문제만큼만 제기하고 절대 확대하지 않는다. 단 그 안에서는 조금의 양보도 없다.

준비는 완벽하고 몇 번씩 가상전략을 짠다. 원자력 공방에서 독일 자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과격주의자들의 것’이라는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구하기 어렵지만 누구도 공박할 수 없는 영국 의회자료를 사용했다. 정부의 공격을 미리 예측한 결과다.

적게 욕심을 내지만 하는 일에 철저한 것은 모든 분야에서 반복된다. 해야 할 일을 위해 다른 것은 과감히 배제시킨다.

에너지를 최대로 쓰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공격목표를 제한하고 대신 일은 철저하게 한다.

이 생존전략은 모임을 만들고 운영할 때 응집력도 극대화시키는 부가적인 장점이 있다. 친구사이에서 리더를 한 적이 없다.

모임 아이디어는 내지만 회장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다. 활동성만 제한하는 감투나 지위는 구차스럽다. 이러니 관여하는 모임이 잘 될 수 밖에 없다.

옷도 넉넉한 것을 입는다. 간섭은 싫다. 어떤 욕구도 일에 저해요소가 되면 제거된다. 어머니와의 정서적 거리감도 이에 해당한다. 결혼을 일부러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극대화된 효율성을 위해서 여성성도 억제된다. 그의 삶에는 통상적인 여성의 역할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갱년기도 느껴보지 못한 것 같다. 바라는 것은 소비자단체 활동가들이 전문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 경제적인 안정이 확립되는 것이다. 그 뿐이다.

●송보경 교수 약력

▲ 1945년 서울출생 ▲ 1967년 서울여대 사회학과 졸 ▲ 1983년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설립, 회장 (1996~2001년) 역임 ▲ 1988년 필리핀대 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 ▲ 현재 서울여대 생활교육부 교수,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모임 이사 ▲ 국무총리실 국민포장(1996년), 행정자치부 산업포장(1998년), 국민훈장 동백장(2001년) 수상

/김병후의 여성탐구

■지인들이 본 송보경

송 교수는 공식석상이 아닌 곳에서는 문화예술계 사람들을 주로 만난다.

미당 서정주의 제자인 문정희 시인은 송 교수의 10년 지기다. 서울여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알고 지냈다.

그는 송 교수를 두고 “언어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문학적 소양으로 단련된 언어감각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단지 내용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자료 수집력으로 그 열정이 드러난다.

지난해 문 시인이 ‘기생시집’을 발간할 때 송 교수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다.

김소월 시인의 스승인 김안서의 ‘조선여류 한시선집 꽃다발’, 저자미상의 ‘역대 여류 시가선’ 등 희귀 자료들을 송 교수를 통해 빌렸다.

97년 폴란드 시인 심보르스카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마침 스웨덴 환경회의에 가 있던 송 교수가 그에 관한 여러 자료를 현지에서 구해왔다.

칠레로 출장을 갔을 때는 네루다 파블로의 생가에서 집시 여인이 파는 기념반지를 문 시인에게 사다 주기도 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섬세하고도 실리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금속테 안경에 깡마른 이목구비, 언뜻 차갑고 깐깐해 보이는 외모와는 퍽 다른 구석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4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첼리스트 이종영 경희대 음대 교수 또한 “여리고, 비단 같은 면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면을 자상하게 챙겨줘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말한다.

“젊은 날의 꿈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나이쯤이면 서서히 사그라들법한 세상사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너무도 왕성하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집중력과 끈기가 대단하다.

이런 요소들이 결혼해 가정을 가진 친구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양은경기자

key@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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