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골가뭄이 해갈된 곳은 광주월드컵경기장이었다. 지난달 13일 일본 청소년축구대표팀과의 1차 평가전서 최성국(19ㆍ고려대)이 터뜨린 결승골은 한국축구의 새 별 탄생을 예고한 축포였다.절묘한 드리블에 이은 벼락 같은 슛. 그날 밤 국가대표 선배들이 튀니지를 상대로 또다시 득점에 실패하자 작은 체구의 그는 단숨에 한국축구의 주역으로 떠올랐고 지난 주 히딩크 호에 승선하는 기쁨까지 맛봤다.
대표발탁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히딩크 감독에게 뭔가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한 것일까. 12일 대구합숙훈련을 앞두고 있는 그는 대표생활의 노하우를 얻기 위해 9일 오전 대학선배인 이천수(21ㆍ울산)를 찾아갔다.
오른쪽 발등을 다쳐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재활훈련 중인 이천수는 2년 후배를 반갑게 맞았다.
이천수= 야! 성국아. 많이 멋있어 졌네.
최성국= (멋적은 웃음) 형, 발등은 좀 괜찮아?
천수= 그래서 이 좋은 봄날 여기서 치료받고 있잖아. 그나저나 성국이 덕에 이제 나도 대표팀 막내생활을 청산하게 됐다. 한국에 돌아오니 너 때문에 난리더라.
성국= 대표발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긴장도 많이 됐지만 이젠 진짜 기량을 보여줄 자신이 생겼어. 지난해 대구에서 이틀동안 대표팀에서 훈련 했었잖아. 그때는 운동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모를만큼 떨리더라고.
천수= 내가 봐도 네 드리블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해. 드리블 개인훈련은 어떻게 해왔니.
성국= 고등학교 때 아약스 훈련프로그램이나 브라질 프로리그 비디오를 많이 보고 무작정 따라 했지 뭐. 저녁8시부터 12시까지 하루 3시간은 항상 불 켜놓고 공 다루기 연습을 했어. 키가 작으니 기술이라도 익혀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99년에 형을 처음 봤을 때 공차는 폼이 멋있어서 많이 따라 하기도 했어. 그나저나 형은 이제 대표생활에 완전히 적응했으니 나에게도 적응법을 좀 알려줘.
천수= 내 생각엔 우리 나이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대표 훈련지에서는 너무 차분한 네 성격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야. 운동장에서는 선ㆍ후배가 없다는 홍명보 형의 말처럼 과감해져야 해. 선배들의 얘기를 듣고 위축되면 다리도 굳어지잖아. 그리고 1주일의 훈련동안 항상 생각하면서 움직이려 애써봐. 운동장에서 만큼은 나의 막무가내식 성격을 닮아보는 게 어때.
성국= 형이 국가대표로 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야.
천수= 역시 스케일의 차이인 것 같아. 개인기가 뛰어난 네가 국가대표로 활약하려면 저돌성을 갖춰야 해. 치고 나가면서 드리블 돌파가 가능하다면 감독님이 얼마나 좋아하겠냐. 너나 나나 아직 그런 부분이 부족하잖아.
성국= 요즘 형도 골이 안 터져 많이 속상할 것 같은데.
천수=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게 된다면 웬지 골을 넣을 것도 같은데(웃음). 나도 올해 월드컵은 배우는 단계에 불과해. 너나 나나 지금의 경험을 토대로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닐까.
대화가 끝날 무렵. 이들은 갑작스레 지난해 함께 미팅 나갔던 이야기를 꺼내며 폭소를 터뜨렸다. 아직 여자친구가 없냐는 질문에 이천수의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축구만 열심히 하게 생겼잖아요.” 최성국도 잠시 생각하더니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최성국의 못다한 이야기
한국축구의 살 길은 체력과 스피드, 조직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펠레, 마라도나 같은 뛰어난 개인기를 갖춘 스타들이 축구팬들을 흥분시킨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기술축구, 재미있는 축구를 위해 더욱 개인기를 향상시키고 싶다.
한국에도 이런 개인기를 갖춘 선수가 있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꿈이다. ‘끝까지 상대선수들을 다 제치려 하냐’고 감독님께 야단 맞기가 일쑤지만 경기 중 항상 한 두번은 드리블 코스와 골이 들어갈 장면이 저절로 그려진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이 어려워 운동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버스운전기사로 일하시는 아버지(최창모ㆍ45)를 실망시킬 수 없다. 대표발탁 소식을 들은 뒤 어느날 밤. 지단, 라울과 함께 뛰는 꿈을 꿨다. 월드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프로필
▲생년월일:1983년2월8일
▲체격:170cm 68kg
▲출신교:동곡초-역공중-정명고-고려대
▲대표경력:U-16대표(98) U-19 대표(2000~) 현 올림픽 상비군
▲가족관계:최창모(45) 김재영(43)씨의 1남 2녀 중 막내
▲취미:당구(150점) 음악감상
▲좋아하는 선수: 마라도나,오언,사비올라
■스승이 본 최성국
최성국은 볼 키핑과 드리블 능력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다. 간혹 볼을 너무 오래 끌어 팀 플레이에 위배되는 이적행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아직 어린 만큼 개인기량을 살려주는 것이 본인과 한국축구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유망주 육성 차원으로 대표에 발탁됐지만 본선에서도 조커(교체멤버) 정도로는 충분히 활약 가능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이천수는 스피드와 경기를 읽는 시야가 빠르다. 성국이가 천수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다. 성국이가 돌파를 한 뒤 동료에게 정확히 볼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선배를 능가하는 대표선수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조민국 고려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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