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ㆍ국제경제학 교수 NYT 칼럼니스트1973년 아랍권의 석유 금수 조치는 유가폭등과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불러왔다. 79년에도 이란혁명이 다시 유가폭등과 경기침체를 촉발했다.
그렇다면 지금 3차 석유위기가 다가오고 있는가. 가능성을 부인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중동사태가 악화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달러 이상 뛰어올랐다. 이 수준에서 유가가 유지된다 해도 경제 시스템에 줄 충격은 상당하다.
문제는 앞으로 더 큰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분석가들은 이라크의 석유 수출 중단 방침이 1973년과 같은 식의 집단 금수조치로 확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낙관론을 펴고 있다.
그들의 전망이 맞다고 치자. 하지만 79년의 석유위기는 의도적인 금수조치로 초래된 것이 아니었다.
경제학자들은 79년의 위기가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 아직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나는 지난해 캘리포니아 전력 위기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본다.
두 위기 모두 가격에 탄력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경직된 시장과 수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전력 회사나 79년의 원유 생산국 같은 개개의 생산업자는 시장에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다.
이 경우 가격을 올리기 위해 생산을 줄이는 것이 업체의 이익과 맞아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 생산 능력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가격은 급등하게 된다.
하루 700만 배럴의 여분을 갖고 있다는 현재 세계 원유 수급상황에서 이라크의 200만 배럴이 없어진다 해도 그 자체로 석유위기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시 석유금수를 제안하고 있는 이란과 리비아가 합세하면 여분은 남지 않게 된다.
문제는 중동 사태가 더 악화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경직된 시장상황 때문에 산유국들이 증산보다 감산이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유가가 그렇게 쉽게 폭등하는 것이라면 왜 79년 이후에는 세계에서 석유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것일까.
해답은 세계 각국이 대처방안을 강구해 면역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한동안 서방경제는 에너지 효율을 급격하게 높였다. 85년 미국은 73년에 비해 경제규모가 3분의 1이상 커졌지만 석유 소비량은 도리어 줄었다.
하지만 그 뒤 방심한 서방은 다시 석유 소비량을 늘였고 증가분을 대부분 걸프지역에서 충당했다. 국제유가가 다시 중동정치의 볼모가 된 것이다.
다시 유가가 급등할 경우 79년과 같은 재난이 일어날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재난이 충분히 예상된다.
79년 유가폭등으로 물가가 불안하던 서방 경제는 통제불능의 인플레이션 소용돌이에 빠질 위험에 처했다. 주요국은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를 잡았지만 대신 혹독한 경기침체에 빠져들었다.
지난 10년 간의 물가 안정 추세로 볼 때 인플레 공포는 상당히 불식돼 있다. 대신 우려되는 것은 유가가 구매력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세금을 700억 달러 늘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이 경우 중산층이나 저소득층 가정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지금은 구매력 약화가 전혀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급락한 기업투자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낙관론도 활기찬 소비지출이 경제를 떠받친다는 가정 아래 나온 것이다. 만약 유가상승으로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여야 한다면 이런 가정이 무너진다.
소비심리 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조치도 이미 1.75%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처 여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유감스럽지만 현상황에서 세번째 석유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겠다.
물론 외교적 돌파구로 석유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고, 유가가 상승한다 해도 미국 경제는 내가 걱정한 것보다 굳건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포의 시나리오는 언제나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국제경제학 교수 NYT칼럼니스트
/ NYT 신디케이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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