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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영월의 酒泉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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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영월의 酒泉江

입력
200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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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골짜기에 술이 솟는 바위샘이 있었다.양반이 잔을 들이대면 청주를, 천민이 잔을 놓으면 탁주를 그득 부었다. 한 천민이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양반차림으로 옷을 바꿔입고 능청스럽게 잔을 놓았다.

청주를 기대했지만 바위샘은 용케 알아채고 탁주를 부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천민은 바위샘을 부숴버렸고, 이후 술 대신 맑은 물만 흐르게 됐다.

양반이 지어냈음직한 술샘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땅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酒泉)면이다. 실제로 그 곳에는 술통같은 샘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유래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지금 주천에 술은 흐르지 않지만 술처럼 향기로운 강이 흐른다. 주천강이다.

평창군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은 뱀처럼 몸을 뒤틀며 치악산 동쪽 기슭을 타고 남하한다.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꽤 긴 강이다.

길다보니 이름이 많이 바뀐다. 횡성을 지날 때에는 주천강이다.

영월땅으로 들어설 때에는 서만이강, 주천면에 이르러서는 다시 주천강, 영월읍에 다가가서는 서강이다. 영월읍 남쪽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이 된다.

봄기운을 맞으면 주천강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술보다 맑은 푸른 물줄기가 기암괴석을 씻어내리고 강어깨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연이어 핀다.

지난 주 내린 비로 강물과 신록은 한층 싱싱해졌다. 향기로운 술이 따로 없다. 저절로 취한다.

주천강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곳은 요선암과 요선정이다. 주천면 바로 북쪽의 수주(水周)면에 있다.

‘물로 둘러싸인 마을’이란 뜻의 수주면에는 ‘무릉도원’이란 글을 사이좋게 나눈 무릉리와 도원리가 나란히 있다. 요선암과 요선정은 무릉과 도원의 접점이다.

요선암은 수백 개의 화강암 바위 군락이다. 약 500평 정도의 강변에 있다. 물에 씻겨 반들반들한 화강암 덩어리가 각기 다른 크기와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날카롭게 하늘을 향한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앉아있다. 넓은 것은 20여명이 한꺼번에 올라앉을 정도. 바위마다 자연욕조가 있다.

우리말로는 돌개구멍, 전문용어로는 포트홀(Pot hole)이라고 한다. 강물에 실려온 자갈과 모래가 돌 틈을 거세게 휘돌아나가면서 바위를 깎아 만들었다. 묘한 풍광을 연출한다.

요선암에서 머리를 들면 절벽이 솟구친다. 절벽 위에 요선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푸른 강물을 굽어보는 정자로 1913년 수주면 주민들이 계를 부어 지었다.

원래 절터였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마애석불과 5층석탑이 불교도량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마애석불의 모습이 독특하다.

복주머니처럼 생긴 타원형돌에 새겨져 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요선암을 내려다 본다.

요선암에서 조금 더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엄둔계곡이다. 작은 폭포와 깊은 소, 그리고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계류가 20리 가깝게 펼쳐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길에서 바라보아도 물고기떼가 눈에 띈다. 어름치, 돌고기, 동자개, 쏘가리, 동자개 등 1급수에만 서식하는 귀한 물고기들이 살고있다.

주천강 여행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은 사자산 법흥사이다. 7세기 중엽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로 구산선문의 하나로 꼽힌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5개의 적멸보궁 중 하나가 법흥사에 있다. 적멸보궁은 유난히 화재와 산사태 등 재해를 많이 받은 절.

그래서 지금의 절집은 대부분 새 불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절 입구에 서서 산기슭을 바라보는 고즈넉한 산신각과 그 옆의 징효대사탑비(보물 제612호)가 세월의 깊이를 말해준다.

주천강은 원래 곡식을 서울까지 배로 운반하는 창고가 있을 정도로 물이 많고 깊었다고 한다. 요즘은 수량이 많이 줄었다. 주변을 둘러본다. 시멘트공장이 많다.

시멘트공장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허옇게 속살을 드러내고 뭉개진 산들.

주천강의 주위도 예외는 아니다. 나무가 없는 산은 강물도 마르게 한다. 시인의 아픈 글이 가슴을 때린다.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 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게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뒤씹기도 한다 (후략)>

(신경림 시인의 ‘주천강의 마애석불’)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빠진다. 좌회전, 88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23㎞를 직진하면 주천면이다.

마을을 지나 평창 방향으로 난 597번 지방도로를 약 1㎞ 달리면 왼쪽으로 요선암, 법흥사 안내판이 보인다.

좌회전해 약 4㎞를 달리면 요선암, 10㎞를 더 들어가면 법흥사이다. 동서울고속터미널에서 하루 20회 영월읍까지 버스가 왕복한다.

영월시외버스터미널(033-374-2450)에서 주천면까지는 오전 5시 5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하루 15차례, 법흥사까지는 오전 5시 5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5차례 군내버스가 왕복한다. 영월콜택시 (033)375-8282

▼쉴 곳

영월에는 큰 숙박시설이 없다. 주천면은 더욱 그렇다.

정식 숙박시설은 아담한 여관들이다. 다래장(033-372-995), 형제장(372-7474), 주천모텔(372-3588) 등이 영업중인 여관이다.

그러나 민박은 많다. 주천강과 법흥사 인근의 거의 대부분 농가에서 민박을 친다. 모두 민박간판을 걸어놓았다.

주로 여름 바캉스객을 위해 민박을 치지만 철이 아니더라도 하룻밤을 보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먹을 것

언제부터인가 영월 먹거리의 대표주자로 보리밥이 떠올랐다. 장릉 옆의 장릉보리밥집(033-374-3986)이 썩 맛있는 음식을 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향기 진한 된장찌개에 비벼?醮? 보리밥도 맛있지만 초간장에 띄운 생두부, 무엇보다 찬으로 나오는 신선한 야채와 산나물이 손님을 불러모은다.

여행철, 휴일에는 자리를 잡기 힘들다. 때를 놓치고 가면 밥도 떨어진다. 크게 서운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장릉과 청령포 부근에 비슷한 맛을 경험할 수 있는 보리밥집이 즐비하다.

■영월여행 어디 가볼까?

영월은 여행의 천국이다. 볼 것과 느낄 것과 배울 것이 많다. 무엇보다 때가 묻지 않았다. 영월을 찾았다면 두루 돌아보아야 후회가 없다.

우선 비운의 조선 왕 단종의 유적지를 꼽는다. 유배지였던 청령포, 죽어서 묻힌 장릉이 대표적이다. 두 곳 모두 의미를 주는 데만 머무르지 않는다.

청령포는 푸른 강물과 소나무숲이 압권이다. 가벼운 산책코스로 좋다. 단종이 올라 강물을 바라보며 슬픔을 삭이던 전망대에 올라 신록이 묻어나는 영월의 산천을 내려다보는 맛도 괜찮다.

장릉은 고풍스러움과 절제미를 갖춘 능. 역시 소나무숲이 진한 향기를 뿜는다. 소용돌이 역사가 고요하게 침잠해 있는 단종의 무덤.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김삿갓묘도 찾을만한 곳.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 아호는 난고이다.

영월 항시에서 장원급제했으나 그 내용이 조부 김익순을 욕되게 했다고 하여 평생 삿갓을 쓰고 하늘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에 그의 묘가 있다.

묘까지 도로가 잘 닦여져 있고 주변에 장승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서강을 굽어보는 선돌도 볼만하다. 장릉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있다. 안내그림이 시원치 않아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볼만하다.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약 100㎙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30대쯤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선돌은 커다란 돌을 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모습. 기이한 모습에 모두 비명을 지른다. 시퍼런 서강의 물이 아름다운 배경이 된다.

하송리의 은행나무도 지나치기 어렵다. 천연기념물 76호로 지정돼있다. 영월엄씨의 시조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수령은 1,200여년으로 잡고 있다.

한일합방과 6ㆍ25전쟁 때에는 북쪽 가지가 부러지고 해방 때에는 동쪽가지가 부러지는 등 민족의 슬픔과 기쁨을 예언했다고 한다.

영월=권오현기자

koh@hk.co.kr

■길에서 띄우는 편지

10년 전쯤으로 기억됩니다. 불볕 더위가 한창인 바캉스철이었죠. 강원 산골의 깊은 계곡으로 피서를 떠났습니다. 흥겨움보다는 조용함을 원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한참 걸어 경치 좋고 모래밭이 깔끔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물빛이 환상적이었습니다. 텐트를 쳤습니다.

조용함을 원했던 계획을 멋지게 이룰 수 있었습니다. 3박 4일 동안 그 곳에는 더 이상의 텐트가 펴지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아름다운 강변을 독차지하고 원시인처럼 지냈습니다. 어디냐구요? 이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영월의 동강입니다. 텐트를 쳤던 곳은 그 유명한 어라연 옆의 은빛 모래밭입니다.

최근 몇 년간 영월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여행지로서 영월의 운은 신데렐라(?)의 그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단종의 한이 서려있는 ‘충절의 고장’ 정도였습니다. 유난히 공부를 좋아하는 나그네나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사학도 정도가 찾았습니다. 교통도 불편했죠.

원주에서 영월까지 닿는 국도는 구불구불하고 노면이 거친데다, 사고가 많은 지역으로 유명했습니다. 게다가 속도를 못내는 시멘트차가 많아 한마디로 짜증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운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월댐 논란은 동강을 밖으로 알렸습니다.

전국의 안방을 들었다놨다하던 TV대하사극 ‘용의 눈물’은 단종의 유적지를 홍보했습니다. 때를 맞춰 영월에 쉽게 닿는 중앙고속도로도 열렸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유명여행지로 변했습니다. 답사여행은 물론 래프팅, 트레킹 등 레포츠 여행의 명소가 됐습니다.

얼마전 산 위에 활공장까지 만들었습니다. 이제 항공레포츠의 명소로도 이름을 떨칠 예정입니다. 영월 주민의 주머니 사정도 많이 좋아진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이 곳이 여행의 총아로 떠오른 진짜 이유는 영월땅의 속살입니다. 댐 논란과 드라마는 계기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

영월군은 군 전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도 좋을만큼 자연이 아름답고, 보존이 잘 된 곳입니다. 산과 계곡의 기세가 출중하고, 맑은 물이 넘칩니다. 그래서 또 찾습니다.

문제는 보존입니다. 관광은 제살을 파내 돈과 바꾸는 장사가 아닙니다. 보여주기만 해도 수지를 맞출 수 있는 장사입니다. 제살을 파내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조급함을 버린다면 영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오래가지 못할 장사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깎이고 있는 산비탈, 산처럼 강변에 쌓여있는 래프팅용 고무보트, 갈수록 야박해져가는 관광지의 인심 등을 보면 말입니다.

굴삭기와 삽으로부터 지켜낸 정신이 깃들어 더욱 아름다운 영월, 이제 욕심으로부터 지켜낼 때입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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