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7년 4월10일 미국의 신문 경영인 조지프 퓰리처가 태어났다.1911년 몰(歿). 헝가리 출신인 퓰리처는 17세 때인 1864년 미국으로 이주해 남북전쟁에 참전했고, 제대 뒤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독일어 신문 베스틀리헤 포스트의 기자가 되었다. 그는 이내 이 신문을 사들이면서 언론사 경영자로 나섰다.
퓰리처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함께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의 신문 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었다.
신문사 경영에 대한 그의 욕심은 허기증 환자의 식욕 같았다. 1878년 파산 직전의 세인트 루이스 디스패치를 사들인 뒤 세인트 루이스 포스트와 합병해 포스트 디스패치로 재출범시킨 퓰리처는 1883년 뉴욕으로 진출해 뉴욕 월드를 사들여 미국 최대 발행부수의 신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주의에 호소함으로써 이른바 황색 저널리즘을 탄생시켰다.
1889년 노랑 옷을 입은 ‘옐로 키드’를 주인공으로 한 선정적 만화가 뉴욕 월드 일요판에 첫 선을 보였고, 허스트가 경영하는 경쟁지 ‘모닝 저널’이 곧 이것을 흉내내면서 미국 저널리즘은 선정주의의 악순환에 휘말렸다.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말의 기원이 바로 이 ‘옐로 키드’다. 독자를 늘리기 위한 퓰리처와 허스트의 치열한 선정주의 경쟁은 사실을 과장ㆍ왜곡하고 군국주의를 고취함으로써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 한편 이들의 경쟁은 탐사 저널리즘의 토대를 마련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기도 했다. 보도ㆍ문학ㆍ음악 분야에서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상인 퓰리처상은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1917년 제정됐다.
이 상의 운영 주체는 역시 퓰리처의 기부금으로 1903년 창설된 컬럼비아 대학교 신문대학원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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