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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그들만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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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그들만의 잔치'

입력
200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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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진입했으나 경기회복의 혜택은 일부 업종과 계층에만 쏠리고 있다.정부의 내수 부양조치 등에 힘입어 건설, 자동차와 경마ㆍ경륜 등 일부 사행성 서비스 업종은 호황인 반면 섬유, 일반 소매업 등은 답보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는 등 경기의 ‘쏠림 현상’이 심하다.

또 주가와 부동산 가격의 동반 폭등으로 부유층 소비심리는 갈수록 개선되고 있는 반면 전세값과 공공요금 등 물가불안으로 영세ㆍ서민의 체감경기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9일 재정경제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올 1월 산업생산과 서비스업 증가율이 전년 동월대비로 각각 10.2%와 9.7%를 기록하며 지표 경기가 급반등하고 있으나 업종별로는 양극화 현상이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특별소비세 인하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조기집행 등 경기부양책의 최대 수혜업종인 자동차(29.1%)와 시멘트 등 비금속광물(49.0%)은 초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섬유(출하기준ㆍ1.7%), 의복(0.0%), 가죽ㆍ신발(-3.7%) 등 대표적 중소기업 업종은 대부분 여전히 바닥세다.

이같은 현상은 서비스 업종도 마찬가지이다. 올 1월의 경우 부동산 중개업(전년 동월대비ㆍ56.1%), 경마ㆍ경륜(61.9%), 골프장(23.8%) 등은 전체 서비스업 평균보다 3~6배 이상 증가한 반면 금융 5.8%, 보험 8.8% 등의 증가율은 평균에 미달했다.

특히 일반 서민의 체감경기를 가늠케 하는 구멍가게와 일반 슈퍼마켓(종합소매)의 경기는 오히려 2.7%나 감소했다.

경기회복의 온기가 확산되지 않으면서 영세ㆍ서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올 2월 전국 도시지역 2,000가구를 대상으로 ‘소비자 기대지수’를 조사한 결과 평균 지수는 지난 1월 106.7에서 107.7로 1포인트나 높아졌으나, 월소득 100만원 이하 계층은 오히려 전달(103.4)보다 2.7포인트나 낮은 100.7로 나타났다.

반면 250~300만원 소득계층은 109.1에서 113.0으로 3.9포인트 상승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내구재 구매와 관련된 기대지수가 여전히 100을 밑돌고 있다”며 “경기 지표의 상승에도 불구, 일반 서민은 경기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경마·경륜

“그렇지. 달려라, 달려!” 7일 오후 과천 경마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5,000여명의 관람객들은 경주가 진행될 때마다 함성을 터트린다. 뿌연 황사에 연신 뿜어대는 담배 연기가 뒤섞인 채.

이날 열린 12경주 중 최고 배당은 6경주의 122.5배. 10만원을 걸었을 경우 무려 1,225만원을 챙겨갔다는 얘기다.

26개 TV경마소를 포함해 이날 경마장을 찾은 인원은 무려 15만6,188명. 경기 회복과 함께 ‘대박’의 꿈을 쫓아 경마장을 찾는 이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대박’을 챙기는 곳은 과천과 제주 경마장을 운영하는 한국마사회. 지난해 영업일 기준으로 95일 동안 과천에서만 5조5,09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마사회는 올 들어 7일까지 24영업일 동안 벌써 1조8,27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일평균 매출액이 지난해 580억원에서 올해는 760억원으로 껑충 뛴 것.

경륜 역시 폭증하는 관람객에 즐거운 비명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서울 잠실경륜장은 매번 이동좌석을 포함해 1만여석의 자리가 대부분 매진된다. 경기가 열리는 금~일요일 3일간 매출액은 최근 500억원 가량. 지난해보다 20~30% 증가한 수치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관람객 및 매출 증가에 따라 다음달 중 과천경기장에 4만명 가량을 추가 수용할 수 있는 신관람석을 개설한다”며 “경마, 경륜 등 사행 산업이 경기 회복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자동차

“봄나들이라구요? 휴일에 잠이나 한번 원없이 자봤으면 좋겠습니다.”

8일 오후 3시30분 울산 2공장 싼타페 조립라인에서 최병찬씨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털어놓는 볼멘 소리다.

싼타페 생산 공장 라인 직원들은 올해 초부터 평일 연장근무는 물론, 휴일 특근 등으로 제대로 한번 쉬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해도 싼타페 주문량은 되려 늘기만 해 죽을 맛(?)이다.

싼타페는 1일 현재 선주문(백오더)이 4만대이상 밀려있는 상태다. 최씨는 “그래도 할 수 있나요. 3~4개월 출고를 기다리는 고객들이 있는데…”라며 말 끝을 흐렸다.

지난 해 호황을 누렸던 자동차 내수 판매가 올 해 들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차가 없어서 못팔 정도’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다.

현대ㆍ기아ㆍ대우 등 국내 자동차 5사가 1~3월 내수시장에서 판매한 차는 모두 37만9,95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 가까운 증가세를 기록했다.

더구나 3월 내수 판매(14만1,190대)는 설 연휴가 끼어있던 2월(23만892대)에 비해 26.7% 증가, 자동차 내수시장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올 해 1ㆍ4분기동안 18만9,831대를 판매해 분기별 실적으로 지난 1995년 기록(18만7,092대)을 제치고 창사 이래 최대실적을 거두며 자동차 내수시장의 활황을 이끌었다.

이러다보니 인기 차종의 경우 수개월을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현대차 계동영업소 한 직원은 “인기 차종인 에쿠스ㆍ싼타페는 3~4개월을 기다려도 차를 받을까 말까할 정도”라며 “다이너스티, 그랜저 XG, 뉴EF쏘나타 등도 최소한 2~3개월정도 밀려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기아차의 경우 최근 출시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쏘렌토는 현재 2만대이상의 주문 물량이 밀려있어 차량을 받기까지 3~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기아차 신상덕(愼相德) 화성공장장은 “주문이 폭주하고 있는 실정이라 라인을 풀가동해도 주문량을 맞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 영세소매업

서울 암사동에서 10년 넘게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54ㆍ여)씨에게는 경기 회복이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꼬마 애들 군것질 거리나 담배 장사가 고작이예요. 하루 매출이 3만~4만원 밖에 안 될 때도 있고….” 차라리 외환 위기 때가 더 괜찮았다고 하소연한다.

“주변 구멍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아도 단골 손님을 믿고 꿋꿋이 버텼는데 이젠 희망이 없어요. 어지간한 생필품은 인근 할인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물건을 갖다 놓을 수가 없죠.”

구색을 제대로 갖추지 않다 보니 가끔씩 찾는 고객들도 다시 발길을 돌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슈퍼마켓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구의동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한 일반 슈퍼마켓. 1998년 인근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선 뒤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들더니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젊은 주부 손님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야채나 생선 등 식품류는 물론이고 일부 공산품도 할인점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데도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어요.” 사장 이모(48)씨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질수록 영세 소매업체가 체감하는 불황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도 있다.

LG경제연구원 배재성(裵在星) 책임연구원은 “경기 회복은 백화점, 대형 할인점의 치열한 출점 및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져 영세 소매업체의 고객 이탈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중소기업

“경기회복요? 딴 나라 이야기입니다.”

가방ㆍ가죽 업계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겨울이다. 고질적인 인력난과 원가난, 수입 명품의 득세 등 삼각파도의 기세가 여전해 업계 전체의 2월중 공장 가동률은 가까스로 60%를 넘겼다. 공장 10개 중에 4개가 개점휴업중인 셈.

장비 및 인력의 아웃소싱 체계가 잘 잡혀있어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경기 성남의 A사조차도 지난 달 전직원의 절반인 5명을 해고했다.

A사의 신모(49) 사장은 “국가신용 A등급 회복이니 주식시장 1,000포인트 임박이니 하며 다들 들떠있는데 월급 줄 돈이 없어 부득불 종업원들을 내보냈다”며 “어떻게든 해고 없이 회사를 경영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다”고 장탄식했다.

인력 구조조정을 했다지만 당장 일감이 없어 이번 달 공장 월세 내기도 빠듯하다. ‘살아남은’ 직원들은 오후 5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공장을 나서줘야 신 사장의 마음이 편할 지경이다.

그럴듯한 담보 없이는 은행에서 돈 빌리기도 힘들고 2년째 임금을 동결한 상태라 직원들에게 손 벌리기도 어렵게 됐다.

조만간 시장이 살아나지 않고는 올 해안에 15년간 운영해 온 회사 문마저 닫아야 할 판이다. 신 사장은 “벤처기업만 우대하는 정부의 정책은 뒤집어보면 중소기업을 핍박하는 정책”이라며 “3~4개월 동안 쉬지않고 야근작업을 하고도 수출 물량을 못대던 90년도 전후의 활황기가 꿈만 같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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