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을 건 백색(白色)의 추구. 도예 명장 한익환(韓益渙ㆍ80) 옹의 삶은 조선 백자의 비밀인 백색과의 싸움이었다.“청백(靑白), 푸른 색을 뚫고 나온 그 백색은 이미 찾았습니다. 회백(灰白)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색이었어요. 남은 것은 유백(乳白)과 설백(雪白)입니다. 끝이 없습니다…. 20여년 전 내가 조선 백자의 순백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색을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 도자사 발전의 산 역사인 한 옹의 도예 세계를 보여주는 ‘한익환의 백자와 삶’ 전이 10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백상기념관에서 개막해 22일까지 계속된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백상(百想) 장기영(張基榮) 한국일보 창간발행인의 25주기(11일)에 맞춰 열리는 추모전이기도 하다.
한 옹은 이 자리에서 대호(大壺)와 중호(中壺)를 비롯해 알항아리와 술병, 크고 작은 바라기 등 생활용품과, 필통 연적 등 문방구까지 60여년 도예 인생의 자취와 성취를 집약하는 8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백상기념관 1층 전시장에는 ‘부잣집 맏며느리 보는 것 같이 넉넉한’(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표현) 항아리 몇 점이 의젓하게 놓여있고, 2층 전시장에는 ‘사대부의 지성과 서민의 질박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이동주 전 서울대 교수의 표현) 생활 용기와 문방구가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다.
“어느 것이나 적절히 도톰한 두께에 원만한 선을 지녀 안정감이 있으며, 조금 높은 굽들이 상큼한 매력을 풍긴다. 조선 백자의 정신과 생명을 현대에 되살린 명인 한 옹의 세계가 주는 감동이다”라고 정양모 경기대 석좌교수는 이번 출품작들을 평했다.
그는 요즘도 한 달에 사나흘, 서울 집에 들르는 것을 빼고는 경기 용인시 백암면 고안리에 있는 자신의 도요인 ‘익요(益窯)’에서 도자작업을 한다.
그가 발견한 세계 최고의 백토(白土)가 나오는 인근 산에서 흙을 가져다 수만 점의 도자기를 만들고 부순다. 혼자이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있는 막내아들(32)이 조수라면 조수이다.
“색이 안 나면 형(形)은 다 소용없는 것이지요. 몇 만 번 시험해서 진짜 순백이 나옵니다.”
현대 과학도 조선 백자의 비밀을 완전히 밝힐 수는 없다고 한다.
한 옹은 누구보다 백자의 외적 아름다움과 장인의 내적 진심에 접근한 인물이자, 과학적으로도 그 비밀에 가장 근접한 장인이다.
함북 청진 출생으로 중국 옌지(延吉)공업학교 광산과를 졸업한 한 옹은 1948년 당시 문교부 도자기술요원 양성소 요업과를 1기로 수료하고 도예의 길로 들어섰다.
197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첫 전시회를 연 이래 국내외에서 조선 백자의 독보적 인물로 인정 받았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우즈베키스탄 국립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는 그의 작품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로 전시되어 있다.
10여년 전 백내장을 앓아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도, 그는 색의 완성을 향해 쉼 없이 흙을 빚고 물레를 차고 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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