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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위기설'과 특사외교

입력
200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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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간에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을 때 특사외교가 효과적인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았다.가급적 불필요한 의전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본질 논의가 쉬운 구도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친서를 들고 평양을 찾은 임동원 특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록 체류일정이 하루 늘어났지만 공동보도문이란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 탓에 사실상 빗장이 걸렸던 남북관계가 다시 원상회복 된다니 다행이다.

양측은 합의한 6개항을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발표했다.

남측은 대가로 쌀 30만 톤과 비료 20만 톤을 곧 지원하리라 한다. ‘돈으로 평화를 샀다’는 일부의 비판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는 대목이다.

공동보도문에 ‘쌍방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운운 구절이 있다.

통일이 자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야 더 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쟁위험이 사라졌다’고 큰 소리쳤던 정부가 북한에 특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이 웅변한다. 국제정세가 엄청나게 변했다. 미국이 옛 미국이 아니다.

걸프전이 끝나자 “다음 차례는 카스트로와 김일성”이라고 일갈했던 콜린 파월 합참의장이 현재 국무장관이다. 그런 그도 비둘기파로 분류될 정도다.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남북이 하루빨리 허황된 도그마에서 벗어나 현실적 공존방안부터 찾아야 할 까닭이다.

오히려 냉엄한 현실을 일러주어 북한이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 얼마 전 임 특보가 밝힌 대로 ‘2003년 위기설’ 을 비롯, 한반도는 각종 위기설로 어지럽다.

미사일 발사유예 약속이 끝나는 내년 북한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한반도는 다시 전쟁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 있다.

뿐만 아니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내년이 바로 북한의 과거 핵 규명을 위한 사찰이 예정된 해다. 그러나 북한은 경수로 건설 차질을 이유로 불응할 태세다.

반면 미국은 ‘불량국가’일수록 위험한 대량살상무기(WMD)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자세다.

국제사회가 강자의 논리에 좌우되는 현실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북한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미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북한의 과거 핵 규명을 위한 사찰준비가 8월께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8월 위기설’의 근원이다.

이들은 불응하면 군사적 제재도 불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곧 전쟁을 의미한다.

정부가 임 특사의 방북을 서두른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한순간 잿더미로 변하는 전쟁만큼은 어떻게 든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 오버도퍼 전 워싱턴 포스트 도쿄(東京)특파원이 97년 펴낸 ‘두 개의 코리아(The two Koreas)’는 한반도 전쟁의 예상되는 피해를 적시하고 있다.

그는 94년 핵 위기 때 북한과의 전쟁일보 전 상태에서 클린턴 미 대통령이 U턴한 것은 엄청난 피해가 명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윌리엄 페리 국방, 존 섈리카슈빌리 합참의장 등이 클린턴에게 보고한 전쟁 시나리오에는 최초 90일에 한국군 49만, 미군 5만2,000명 등의 사상자 발생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군이나 민간인 피해, 재산피해 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같은 피해 규모도 미군의 신속한 반격이 성공했을 경우다.

전쟁의 참화는 이처럼 형언하기 어렵다. 특히 정밀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9 .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다국적군의 석 달간 공격에 궤멸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벼랑 끝 전략 같은 억지는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 임 특사는 이런 급박한 사정을 북한지도부에게 있는 그대로 전했어야 한다.

다행히도 북한이 미국의 북한담당 대사 수용의사를 표명하고, 북미대화 용의도 밝혔다고 한다. 한반도 위기설이 한낱 기우로 끝나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북한의 향후 태도에 달렸다.

노진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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