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이주일(17)나의 인기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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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17)나의 인기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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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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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를 연재하다 보니 내가 밤업소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웃겼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손님들을 웃긴 대표적인 이야기 하나만 소개하겠다.1980년 8월 전두환(全斗煥) 정권 하에서 방송출연이 금지되고 얼마 후의 일이다. 상스러운 말이 나와도 이해해달라.

이런 식이다. “제가 방송출연이 금지된 것은 다 중계방송을 잘못해서 그런 겁니다. 연 날리기 대회였습니다. ‘네, 많은 연들이 날고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연들입니다. 한 년, 두 년, 세 년. 참으로 많은 년들입니다. 한국년, 중국년, 일본년도 있습니다. 온갖 잡년은 다 모였습니다. 턱 나온 년도 있고, 까진 연놈도 있습니다….’”

그러면 무대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당시 밤업소 레퍼토리라는 게 코미디언 남보원씨가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를 흉내내는 정도였으니 대통령과 영부인의 외모를 빗댄 이야기는 손님들의 속을 아주 시원하게 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이야기를 끝낸 뒤에는 바지를 내리고 빨간 팬티만 입은 채 무대 위를 왔다 갔다 하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걸쭉한 시골 쇼였던 것이다.

TV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출연자를 뒤에서 껴안고 치마를 들어올리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저질’이라고 찍혔지만 야한 이야기와 행동을 진짜 많이 했다.

물론 TBC TV였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당시 황정태(黃正泰ㆍ현 KBS이사회 이사) 제작국장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이주일이 하는 것은 편집하지 말고 그대로 방송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이 덕분에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의 담당자에게는 거의 매일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가 날아들었다. 신문도 연일 내 코미디를 저질이라고 욕했다.

그런데도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토요일 저녁 7시에는 길거리에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방송출연을 정지 당하자 “이주일을 TV에 나오게 해달라”고 시위를 한 사람도 있었다.

유행어도 내 인기에 한몫 했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는 원래 밤업소에서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시면 더 못 생겼습니다’를 줄인 말인데 이게 방송에서 히트를 쳤다.

내 유행어의 인기 비결은 1987년 이영수(李英守ㆍ당시 이주일연구회 대표)씨가 쓴 ‘삐딱한 광대’라는 책에 잘 정리돼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면서 살려는 현대인의 아픈 점을 맹타했다는 지적이다.

서로 잘났다고 우겨대는 세상에서 이주일의 솔직함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는 20년 동안 빛 못 본 인생들의 한을 내가 대변했다고,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는 방송출연 정지를 당한 나의 자조적 인생관이 대중에게 큰 공감을 얻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금 생각해도 수긍이 가는 해설이다.

어쨌든 나는 룸 살롱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1980~81년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룸 살롱이 도입돼 크게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걸핏하면 불려갔다.

재벌 2세나 검사장 같은 사회 지도층들이 나를 데려오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들은 ‘초원의 집’ 같은 데는 얼굴이 알려질까 차마 가지 못하고 은밀한 룸 살롱에서 나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름은 말할 수 없지만 당시 대한민국에서 유명하다는 사람은 룸 살롱에서 거의 다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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