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자(金君子ㆍ70)씨는 1986년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채소장사를 하며 4남1녀의 자식을 키워냈다. 고독과 가난, 그리고 병마와 싸우던 그는 나이 일흔에 이르러 오히려 삶의 안정을 찾았다.1999년 백화점 문예센터 문예창작반에 등록한 후 문단 등단, 시집 출간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최근엔 컴퓨터를 배워 손자ㆍ손녀들과 e메일을 주고 받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올해 칠십. 인생의 저문 날에 다다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결코 내 삶 속에 정년은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이제까지는 알 수 없었던 땅을 뚫고 나오는 봄의 기운을 느끼게 됐으며, 꽃을 보며 웃음짓는 여유를 갖게 됐다.
사실 10여년 전만 해도 나의 일상은 봄의 신생(新生)과 소생(蘇生)따위는 느낄 겨를조차 없는 팍팍한 것이었다.
고향에서 꽤나 다복하고 풍요롭게 살았던 우리 가족이 낯선 서울로 온 것은 30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 땅에 여장을 풀고 가난과 동반하길 수 십 년, 그 와중에 남편은 사업 실패를 거듭했고, 이로 인한 충격을 잊으려고 술로 날을 지새던 남편은 1986년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고야 말았다.
사별로 인한 아픔을 가슴에 담은 채 그때부터 나는 홀로 채소장사를 하며 4남 1녀를 키워야 했다.
이른 새벽 3시면 지친 육신을 이끌고 가락동 청과시장으로 가서 장사에 필요한 야채들을 챙겨와야 했다. 눈보라가 치는 겨울이면 돌덩이처럼, 삼복 더위에는 엿가래처럼 늘어져 버리는 채소와 날마다 싸웠다.
그러던 어느날, 정확히 말하면,1999년 2월 나는 병이 들어 둘째 아들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뒤라, 마음은 한결 가벼웠지만 오랜세월 누적된 육신의 고통은 하루하루가 힘겨운 상황이었다. 병과의 싸움으로 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허탈했다. 이대로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으로부터 백화점 문화센터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됐다. 불현듯 어린 시절부터 심지어 채소장사를 하면서도 틈틈이 써온 글들을 떠올리며, 문예창작시반에 등록했다.
그 곳에 등록한 이들은 20대에서 60대 후반까지 아주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하지만 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만큼은 한결 같았다.
힘든 삶 속에서 한땀 한땀 써두었던 수많은 공책들을 다시 끄집어 냈다.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싹을 움트게 하고 싶었다.
비록 육신은 칠십 나이였지만, 마음만은 30대 젊은이 못지 않았다. 나에 대한 자부심이 살아나니 마음도 즐겁고 건강도 조금씩 회복됐다. 새벽이면 기도를 하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
문예반을 다니는 과정에서 주위 분들의 권유로 부끄럽지만 젊은 날의 기록들을 ‘늦은 외출’이란 제목의 시집으로 엮어 출간하게까지 됐다. 꿈에도 그리던 한맥 문단에 등단하게 까지 됐다.
문화센터가 개최한 시화전에 ‘수영장가는 여인’ ‘어미’등 두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였다. 전시돼 있는 나의 시들을 자식들과 함께 보며, 시 속의 나의 모습이 이제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최근에는 또 다른 곳에서 열린 작품전시회에 ‘풀잎이 되고 나무가 되어 있는(人草人木)’ 이란 나의 시가 전시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것뿐인가. e메일? e메일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미국에 있는 자식들과 컴퓨터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신기했다.
조금은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부에서 시행하는 노인정보화과정을 수강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다니는 먼 길이었지만 배우고 싶은 나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치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자식들, 교인들과 e메일을 주고 받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더 나아가 비록 부족하지만 인터넷상에 나만의 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내 육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닐지라도 내 영혼과 꿈과 시를 담을 수 있는 진정한 나의 집이 생긴 것이다.
나에게는 인생은 육십부터가 아니라 칠십부터이다. 배운다는 것처럼 알찬 것은 없는 것 같다. 배우게 되면 아는 것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배려할 수 있는 아름다운 생각들로 항상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배우고 익힌다는 이 커다란 즐거움을 나는 나이 칠십에 새로이 경험하고 있다. 남은 생애에도 큰 희망을 걸어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