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거리가 명품들로 출렁댄다. 루이뷔통 가방, 프라다 선글라스, 구찌 벨트, 크리스챤 디오르 모자, 에르메스 스카프, 페레가모 구두….하지만 명품을 어설프게 흉내낸 ‘확연한 가짜’와 육안으로는 명품과 구분이 어려운 ‘진짜 같은 가짜’가 뒤섞여 무엇이 명품이고 뭐가 이미테이션인지 가리기 힘든다.
이미테이션 경제의 절정기를 맞고있는 동대문 패션몰을 찾아봤다.
주말인 6일 오후 9시. 서울 동대문 한 패션몰은 ‘밤 손님’을 맞기 위한 분위기가 조금씩 무르익는다.
패션잡화 매장이 들어선 4층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보란 듯이 펼쳐놓은 일본 명품 잡지.
“이미테이션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업소 점원은 잠시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다 “우리는 그런 것 안 팝니다”며 뒤돌아섰다.
다른 매장으로 자리를 옮겨 여성용 가방을 둘러 보자 이번엔 점원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매장에 나와있는 것 말고 ‘A급’으로 한 번 보시죠.”
동대문 패션몰에서 명품과 똑같이 정교하게 복제된 이미테이션 제품은 최상품이라는 의미에서 ‘A급’으로 통한다.
4~5권쯤 쌓여있는 일본 명품 잡지 중 하나를 꺼내 든 점원이 장황한 설명을 이어간다.
“저기 걸려있는 가방은 루이뷔통을 흉내낸 것이예요. 3만5,000원에 팔죠. 마크가 A자와 V자로 돼있어 가짜인 것이 금방 드러나죠. 반면 ‘A급’은 진짜 루이뷔통 처럼 L자와 V자로 돼 있어요. ‘A급’은 가죽이나 모양새 등이 진짜 명품과 똑 같아요.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구분을 못하죠.”
잡지에 12만엔(120만원 가량)으로 적힌 루이뷔통 숄더백을 가리키며 ‘A급’을 달라고 하자 점원은 “해외 브랜드업체가 가짜의 범람을 항의하는 바람에 경찰의 단속이 부쩍 심해져 매장엔 내놓지 않는다”고 말한 뒤 창고에서 3종류의 ‘A급’을 들고 온다.
사진 속의 명품과 도저히 구분이 안 된다. 가격은 13만원.
완전한 가짜보다는 훨씬 고가이지만 진짜 명품 가격과 비교하면 10분의 1에 불과하다.
신용카드로 계산할 수 있느냐고 하자 “이미테이션은 정상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다. 현금으로 계산하면 1만5,000원 가량 빼 주겠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지갑 매장. 점원이 창고에서 들고 온 여성용 샤넬 지갑의 가격을 6만8,000원으로 부른다.
흥정을 하자 3,000원을 깎아주겠다고 하면서 “이게 진품은 시중에서 80만원 가량 한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23만원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젊은층도 이미테이션을 많이 찾지만 아무래도 주 고객은 일본인이라는 것.
업체 관계자는 “일본 사람들은 책자까지 들고 와서 물건을 찾는데다 물가 차이가 있는 만큼 가격을 높게 받아도 괜찮다”며 “일본 상인들이 국내에서 이미테이션을 구입해 진품과 섞어놓고 팔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소개했다.
가장 수요가 많은 가방, 지갑은 물론 벨트, 선글라스, 구두, 액세서리, 심지어는 의류까지 동대문 패션몰은 그야말로 이미테이션 명품의 천국이다.
한 패션몰 관계자는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지만 이미테이션 제품 판매 수익이 전체 수익의 절반을 넘는 매장이 적지 않다”며 “가짜 명품이 동대문 패션몰이나 이태원, 이화여대 앞 상가 등을 사실상 먹여 살리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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