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거리에 봄이 넘쳐 납니다. 꽃으로, 대지의 기운으로, 혹은 연두빛 새순으로. 제가 몇 년 전부터 이런 봄이면 찾아 다니는 나무가 있는데 바로 개나리입니다.이 즈음이면 온 거리마다 노란 칠을 해댄 듯 샛노란 개나리의 물결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개나리를 찾아다니느냐고 물으시겠지요?
개나리는 거리와 마당, 공원에는 있지만 산에는 없습니다. 절로 자라는 개나리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나리는 세계적으로 여러 종류가 있고 무엇보다도 원예 품종으로 만들어 ‘골든벨’이란 별명으로 온 지구인의 사랑을 받고 있죠.
그 중에서 우리의 개나리 학명(學名)은 휘시티아(Forsythia koreana)로 한국을 대표하는 특산식물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참 자랑을 하려고 하는데 부러 심지 않은, 절로 자라는 자생지를 찾을 길이 없는 것이지요.
그저 기록에는 전남 대둔산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묘향산까지 전국에 자란다는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개나리의 형제인 산개나리나 만리화 같은 종류가 북한산이나 설악산 같은 곳에서 드물게 자라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찾고 싶은 개나리와는 조금 다른 종류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개나리가 많은데 구태여 어렵게 자생지를 찾을 필요가 있겠냐고 물으시겠지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거리의 개나리에게서는 좀처럼 열매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재의 개나리들은 줄기를 잘라 꽂은 것이죠.
부모를 닮은 자식이 아닌 아버지와 똑같은 복제품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진 것이니 열매를 맺을 기회도 적으며 구태여 맺을 필요도 없어 나태해진 모습이지요.
하지만 어느 날 사람들이 개나리가 싫어져서 개나리가 자라던 곳에 새롭게 사랑한 다른 꽃나무를 찾아 심는다면 개나리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자연 속에서의 도피처가 없으니 거리에 개나리가 아무리 많아도 많은 것이 아닌 셈이지요.
오늘 문밖으로 나가 개나리를 보십시오. 개나리의 꽃은 다 같아 보여도 암꽃과 수꽃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꽃잎은 네 갈래로 갈라져 있고 그 속에서 두 개의 수술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윗부분의 꽃밥은 서로 뭉쳐있습니다.
아주 작은 암술은 그 아래에 있는데 제 기능을 못하지요. 이런 꽃이 바로 수꽃이며 우리 주변엔 대부분 이런 꽃들만 있습니다.
아주 아주 드물지만 간혹, 가운데 있는 암술이 수술보다 더 높게 올라와 있는 꽃이 있는데 바로 암꽃입니다.
수꽃의 꽃가루가 바로 이렇게 생긴 암꽃의 암술머리에 닿아야만 비로소 씨앗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만일 운이 좋게도(정말 행운이 없으면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암꽃을 만난다면 지켜봐 주세요.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해져 개나리가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을 때, 이 꽃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가을이면 작지만 위대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바로 열매 말입니다.
/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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