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요즘 게이오대 교수인 카사하라 히데히코(笠原英彦)의 ‘역대 천황 총람’이란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3월초 아사히신문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부문 1위를 차지한 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신화시대의 진무 천황에서 시작해 쇼와 천황에 이르기까지 역대 천황의 즉위 경과와 사적을 정리해놓고 있다.
신문 서평은 “강력한 중심을 원하는 대중의 막연한 기분이 뒷받침돼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분석한다.
이 신문이 집계한 3월24일자 베스트셀러 픽션 부문에는 일러스트레이터 고이즈미 요시히로(小泉吉宏)의 ‘대강 보는 겐지 이야기 마로, 응?’이라는 만화책이 올라있다.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는 9세기 일본 천황의 친척인 겐지가 여러 여인과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고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만화판 겐지 이야기이면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화라 해서 허술히 볼 책은 아니다.
겐지 이야기 전문 연구자가 정통파 입문서라 했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겐지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책은 단연 돋보인다. ‘불안한 시대에 있어서 일본적인 것, 고전으로의 회귀’라는 지적이다.
이런 책들이 많이 팔리는 현상을 두고 역사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맥을 같이 하는 일본의 내셔널리즘적 정서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거품 경제가 무너지고 난 뒤 대기업이 파산하고 강제 해고가 급증하는 등 사회가 불안해지자 일본 국민 사이에는 전에 없던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는데 그런 위기감이 천황이나 고전으로, 그리고 국가로 달려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내셔널리즘적인 움직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항하는 움직임도 상대적으로 활발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강상중(姜尙中)이 쓴 ‘내셔널리즘’과 역시 같은 저자가 써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지향하여’란 책이 그렇다.
강상중은 한국인 2세로 재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도쿄대 교수에 임용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국가중심주의적 내셔널리즘을 사상사적 측면에서 비판한다.
그리고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난 유럽연합(EU) 같은 아시아 지역 공동체를 실현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의 책은 도쿄대 구내서점 베스트셀러 랭킹 10위 안에 들어있다.
일본 내셔널리즘의 횡행과 그 대항세력의 대두, 일본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황선영 도쿄대 비교문학·문화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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