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테마 한국문화사’(돌베개) 시리즈입니다. ‘백자’와 ‘궁중문화’, 그리고 ‘수원화성’ 3권이 나왔는데 출판사는 100권까지 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내용이나 디자인도 손색이 없지만 더 강한 인상을 받은 이유는 바로 ‘우리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국내 출판사가 주제를 선정해 국내 필자에게 맡겨 공들여 만든 책입니다.
기자에게는 한 주일에 100권 안팎의 새책이 도착합니다. 이 중 좋은 책을 골라 소개하는 게 제 일입니다. 책을 선정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 필자가 쓴 책입니다. 이런 기준을 정한 것은 최근 나온 책 가운데 번역물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출판연구소의 집계에 따르면 전체 출판 종수에서 번역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8년 18%, 99년 19.6%, 2000년 25.3%에서 지난해에는 28%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은 3%가 채 안되고 일본도 7%를 조금 넘습니다.
번역물 비중이 높은 독일도 12%에 불과합니다. 이에 반해 우리 책이 외국어로 번역돼 나가는 비율은 수치로 잡기도 힘들 정도로 미미합니다.
이 수치에는 우리의 낮은 문화 콘텐츠 생산 능력과, 쉽게 책을 만들려는 출판계의 안이한 모습이 반영돼 있어 씁쓸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인들이 세계 일류의 상품을 만들어낸 지 오래됐습니다. 각 분야의 연구성과가 세계적인 전문지에 실리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유독 지식의 집적체인 책만 아직도 국내 필자의 저서가 대세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요?
외국책을 들여오지 말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국경이 무의미해진 시대, 좋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들여와 읽혀야지요. 그러나 외국서 조금 인기라도 있었으면 과당경쟁을 벌여 인세를 올려 놓습니다.
그렇게 나온 책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회의적입니다. 외국 출판사에 줄 수억원의 선인세를 우리 책을 기획하고, 필자를 찾는데 투자한다면 그만한 책이 나오지 않을까요? 우리 책 만들기는 외형만 덩그렇게 커진 우리 출판계가 함께 풀어야할 숙제가 됐습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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