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을 휩싸고 있는 이념ㆍ노선 공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급속히 번진 공방은 정책을 비교ㆍ검증하는 건전한 토론이라기 보다는 지지계층을 분할하고, 상대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려는 득표 전략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선거가 지역주의와 인물 본위의 맹목적 선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계기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인신공격성 입씨름으로까지 흐르고 있는 현재의 이념 공방은 이런 기대를 일탈할 소지가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대방에 흠집을 내려는 인신 공격성 발언은 안된다”면서도 “원칙적으로 대통령을 뽑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인 만큼 구체적 정책 내용을 담은 건전한 이념 논쟁은 본격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노선 알아 볼 정책제시 실종…비방성 색깔論은 소모적
공방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노무현(盧武鉉) 고문의 지지율 급상승에 놀라 한때 경선 포기까지 검토했던 이인제(李仁濟) 고문은 “당의 좌경화를 막겠다”, “급진 좌파는 경제에 독약”이라는 등의 발언으로 노 고문을 ‘왼쪽’으로 규정하며 수세 탈피를 시도했다.
이에 대해 노 고문측은 “수구 냉전적 사고”, “극우적 시각”이라고 일축하며 논쟁을 피하는 데 그쳤을 뿐 본격적 정책 논쟁으로 끌어 가지는 못했다. 그 결과 소란에도 불구하고 노동 복지 재벌 정책 등 이념 성향을 재어 볼 만한 분야의 구체적 정책 비전을 둘러싼 논쟁은 실종됐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더욱이 한나라당 이 전총재가 3일 “급진 세력이 좌파적 정권을 연장하려 한다”고 밝히면서 여당 내부에 머물렀던 이념 공방은 여야간, 야당 내부, 청와대와 야당간 등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감정 싸움 양상의 공방이 이대로 번지다가는 검증을 거쳐야 할 중요 쟁점이 소모적 정치 공방에 묻혀 버릴 우려도 크다.
서강대 김광두(金廣斗) 교수는 “현재의 이념 공방을 ‘색깔 공방’으로 불러서는 어감상 공산당 색출을 연상시키는 역(逆)색깔론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책과 노선을 둘러싼 공방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며 “충분히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민주당 노 고문은 이 고문이나 이 전총재와는 노동 복지 재벌만 정책에서 분명한 노선의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숭실대 강원택(康元澤) 교수는 “작금의 공방이 정책 내용을 결여한 지엽말단적 정치 공세로 흐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단순한 색깔론은 오히려 유권자들의 반발을 부르게 된다는 점을 후보들이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현재의 이념 공방은 지역 구도가 약화하고, 서구처럼 이념적 차별성이 강조돼 가는 변화의 흐름을 보여 주기도 한다”면서 “여야를 떠나 후보들이 이념 공방을 무조건 피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정책으로 스스로의 노선을 분명하게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영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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