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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방송인 박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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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방송인 박찬숙

입력
2002.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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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함과 예리함, 철저한 일 관리, 그리고 절제된 여성성. 우리나라 여성 앵커 1호.그러나 다른 ‘여성 1호’들이 자기 노력에 의해 된 것에 비해 자신은 방송국의 발령에 의한 것이므로 1호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가장 화가 나는 경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꼭 해야 할 말이거나 질문을 놓친 때. 그가 바로 박찬숙이다.

만나서 한 첫 발언은 의외다.

얼마 전 후배 아나운서가 결혼생활 때문에 퇴직하려고 인사를 왔다고 한다. 그것도 두 명이.

아직도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물론 결혼 자체가 퇴직과 연결되던 본인과는 다르지만 결혼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지금도 쉬운 일이 아니다.

육아 문제 때문이다. 할머니들도 당신들의 삶이 중요하고, 탁아시설은 마땅치 않고 인건비는 비싸다.

1968년 방송국에 입사. 20대에 대담프로그램을 맡는다. 당시 철기 이범석 장군, 동요 ‘반달’의 윤극영 선생 그리고 소설가 김동리씨 등과 대담한다.

윤극영 선생으로부터는 ‘지금까지 이토록 교감이 잘 되는 인터뷰는 없었다’ 라는 칭찬을 듣는다.

20대의 초보 아나운서가 전 국무총리 등 쟁쟁한 원로들과 조금의 주저 없이, 그것도 교감을 끌어내는 대담을 진행한다.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본인도 모르는 이유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취임식의 사회를 볼 때나 1971년 남북적십자 회담 전 북한에 파견되는 대표자들을 위한 모임과 같은 큰 행사에서 사회를 볼 때도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실수가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분위기로는 무거운 자리였다. 그런데 떨리기보다는 ‘신났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현재는 더 거리낌이 없다. 임기응변과 순발력 있는 질문,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 그리고 출연자에 대한 거침없는 면박으로 유명하다.

청취자를 대표하는 정당성으로 어떤 질문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 입장도 충분히 고려한다.

자신의 ‘여성 1호’에 대한 가차없는 평가처럼 다소 강박적으로 객관성과 평형을 유지하려 한다. 큰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미인이며 머리가 좋은 어머니의 외딸로 태어난다. 장남인 아버지 밑에서 아버지 뿐 아니라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엄격한 가풍의 할아버지께서 제사를 지낼 때 여자아이였음에도 단독으로 절을 하게 하였다.

여자아이로서 참여시킨 것이라기보다는 사내아이 대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녀차별을 느껴본 기억은 없다.

아버지는 첫 딸을 아들처럼 기르고 아들처럼 상의한다. 당연히 여성적인 면보다 남성적인 부분이 활성화된다.

할아버지 아버지와의 따뜻한 관계는 많은 영향을 준다. 남자 어른들과의 긍정적인 관계는 초기 방송인으로서의 적응에 탁월한 밑거름이 된다.

이십대의 그녀는 큰 행사의 섭외가 들어오면 시작 전 이미 ‘잘해낼 것’이라며 좋은 결과를 확신한다.

이런 당당함은 자신에 대한 철저함을 통해 점점 더 관록 있게 진화한다.

특별한 요구 없이 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아버지의 기대에 철저한 자기 관리로 부응한다.

신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준 24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대담 프로그램에서 질문을 할 때도 군더더기가 없도록 한다.

가족들은 ‘뉴스중독’ 이라고 부른다. 다음 날 신문을 기다리지 못하고 모든 뉴스를 다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을 위한 자료는 가능하면 직접 챙긴다.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직접 챙기는 철저함과 불안 없는 탁월한 대담능력은 이미 준비된 ‘여성 1호’ 뉴스 진행자였다.

그래도 발령난 것이기에 자신의 노력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냉혹한 자기 평가는 대담을 불안 없이 진행하는 것과는 반대로 준비과정에서 가혹한 긴장상태를 유지토록 한다.

좋은 엄마이고는 싶다. 아이들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 도시락을 직접 챙겨 주었다.

다른 것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식도 만들고 김치도 직접 담근다. 아이들은 엄마가 ‘나도 돼’병을 갖고 있다고 놀린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꼭 집에서 ‘나도 돼’라며 그대로 복제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긴장을 풀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딸은 귀엽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아들이 늦게 일어나는 것은 참지 못하는 그 완벽성은 그대로이다.

그래도 가정에서는 비교적 여성성을 편안하게 풀어놓는 반면 일의 공간에서 여성성을 강조한 적은 없다.

예쁘다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일부러 꾸미지 않는다. 능력으로 승부하기 원하지 외모가 관여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굉장히 잘해야 한다’는 일에서의 철저함과 완벽성은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에 기인한다.

여성으로서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다. 남성들과 동등한 경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여성성은 일에서는 강박적으로 절제된다.

여성성을 마음껏 표출하는 장소는 자신도 모르게 따로 마련하였다. 글쓰기이다. 1992년 ‘파꽃과 꼬리’로 동서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한다.

감수성이 돋보이는 인간적이고 섬세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감추어졌던 여성성이 47세 나이에 사회적으로 표출된다.

생물학적 여성성이 약해지는 나이여서 차라리 안전을 느낀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약해진 생물학적 여성성을 사회적으로 대치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박찬숙에게 또다른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여성성이 요구되는 방송일에서, 시사프로그램이 아닌 인간을 다룬 토크쇼는 어떨까.

●약력

▲1945년 경기 수원생

▲1968년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KBS입사

▲1975년 하와이 한국일보지사 '라디오한국' PD겸 MC, 76년 KBS 보도방송위원으로 복귀

▲1980년 해직, 82년 EBS 교육방송 PD, 87년 KBS 뉴스앵커로 복귀

▲1994년부터 KBS 제 1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박찬숙입니다' 진행중. 95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

▲저서: 소설집 '사막에서는 날개가 필요하다'(1998), 시사평론집 '세상을 연다, 사람들을 연다'(1995)

▲2000년 4월 서울언론인클럽상 , 9월 방송대상 앵커상 수상

■PD들이 본 박찬숙

9년째 자신의 이름을 걸고 KBS ‘라디오정보센터’를 진행하는 박찬숙씨.

PD나 스태프 등과의 관계에 대해 “그들에게 나를 맞추기보다는 그 반대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만큼 제작진에 남긴 인상이 강렬하지 않았을까.

지난해 박찬숙씨와 ‘라디오정보센터’를 같이 했던 최 영PD는 “일에 관한 한 욕심이 지나칠 정도다. 냉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 바깥에서는 다른 모습도 보인다”고 평한다.

시간도 부족하고 인터뷰하기도 어려운 인사라 PD입장에서는 ‘물리적으로 안된다’고 판단하는 섭외라도 박찬숙씨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1996년 방송을 같이 했던 이종만 PD는 “사전취재도 철저하다. 대략 정황을 파악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세부사항을 캐묻는다”고 말한다.

굵직하고 뚜렷한 이목구미처럼, 철두철미한 일처리 실력과 세상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단단히 결합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을 위해 수시로 먹을 것을 챙겨오는 등 의외로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면모도 지니고 있다.

최 PD는 “남몰래 불우이웃돕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섭외력은 제작진들이 감탄해 마지 않는 박찬숙씨의 강점이다. 최 PD는 “청와대 주요인사와 직접 통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한 기획물 ‘지금은 지방시대’ 에서는 광역단체장 16명을 서울 스튜디오로 불러모아 릴레이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경쟁프로그램에서 PD가 공보관을 통해 정식으로 인터뷰 요구를 했다가는 박씨가 장관에게 직접 거는 전화 한 통에 ‘물’을 먹기 일쑤.

대통령부인 이희호여사, 김운용 IOC 위원, 진념 재경부장관 등이 이렇게 불러낸 인사다.

이제는 그러한 공력이 쌓여 취재원들이 자발적으로 그 명성에 부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제작진들은 분석한다.

양은경기자

key@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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