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한 번 할까.” 허장강의 성대모사에 빈번히 인용되는 대사다. ‘장기 자랑’이 ‘개인기’로 바뀌듯, 이 대사도 이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우리 어색한 거 없애게 뽀뽀나 할까요”로.
‘생활의 발견’(감독 홍상수)에서 명숙이 고기를 먹던 경수에게 던진 말이다.
명숙은 이전부터 연극배우인 경수의 팬이었다나. 그래서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나.
어색해서 뽀뽀를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뽀뽀를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어색해진 것은 아닐까. 어색함은 욕망을 먹고 큰다.
‘생활의 발견’은 다른 말로 ‘어색함의 발견’이다. 감독은 수많은 어색한 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 놓는다.
경수가 춘천 선배와 청평사에 가기 위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릴 때, 선배는 어떤 중년 남자와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예 안녕하세요.” “사업은 잘 되시죠.” “예, 그만그만 합니다.” “여긴 제 친구입니다.”
사장과 친한 사이였더라면 선배는 아마 그의 이름을 알려주었을지도, 악수를 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서 끝났다.
선배와 사장은 명시되지는 않으나, 서로 무시할 수도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은 그런 사이. 선배는 목적지인 청평사로 가는 길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인다.
“사장님 그럼 먼저 가세요. 저희는 다른 쪽으로 가려고요.” 어색함을 피하려 청평사를 포기했다.
둘 사이의 역학관계가 성립할 때, 약자는 그 어색함을 더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어색함은 권력관계에 기반한다.
기차에서 만난 유부녀 선영에게 한눈에 반한 경수. 스토킹에 가까운 집적거림 끝에 결국 선영(추상미)을 기차역으로 불러낸다.
출발 15분전, 드디어 그녀가 나타난다.
“어머 나 어렸을 때도 이 꽃 많이 빨아 먹었는데.” “꽃 이름이 뭐죠.” “사루비아요.”
둘은 오로지 사루비아 꽃속 꿀을 먹기 위해 만났다는 듯 그 짓에만 열중한다. 물론 둘이 하고 싶은 일은, 그리고 하려는 일은 따로 있었다.
그러한 어색함과 어색함을 깨려는 시도가 없이 다짜고짜 ‘본론(섹스)’으로 들어가려 했다면, 둘은 절대 그 지점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다. 어색함은 필연이다.
나를 보는 그의 시선이 어색하다? 그렇다면 혹시? 그러나 잊지 마시길. 때로 어색함은 혐오를 감추려는 휴머니즘일 수도 있으니까.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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