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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분쟁Q&A / 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 "공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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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분쟁Q&A / 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 "공존은 없다"

입력
2002.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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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 전쟁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테러 세력을 무력화한다는 목표 아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완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대부분 자치 지역을 점령했다.팔레스타인 과격조직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살 폭탄 테러로 맞서고 있다. 이ㆍ팔 사태는 다시 국제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 문제의 근원과 역사를 살펴본다.≫

Q. 양측이 극한 대립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A. 이들의 다툼은 삶의 터전을 둘러싼 생존의 문제였기에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15세기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으나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자 대부분 해외로 이주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 왔다.

1948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돌아와 2만 2,000㎢(남한 면적의 23%)의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두 민족은 불구대천의 원수로 변했다. 유대민족으로서는 2,000년 만에 ‘약속의 땅’에 돌아온 것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교도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셈이 됐다.

그 뒤 이 땅을 두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4차례 전쟁이 발발했으나 번번이 아랍국가의 패배로 돌아가 이슬람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Q. 땅 문제 뿐인가.

A. 물론 유대인과 아랍인이라는 종족 문제, 유대교와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갈등이 크다.

연중 마르지 않는 요르단강의 ‘생명수’를 확보하려는 물싸움도 분쟁의 한 원인이다. 무엇보다 대 아랍권 견제를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친 이스라엘 정책과 이에 대한 아랍권의 반발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

Q.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이 이뤄질 듯하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A. 그 동안 중동평화 협상은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떠나는 대신 안전을 보장 받는 ‘땅과 평화의 교환 방식’으로 진행됐다. 엄밀하게 말해 이 방식은 이스라엘에 의해 강요된 논리이다.

팔레스타인측의 입장에서는 애당초 자신들의 땅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 상호 실체를 인정하자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양측간에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기도 했으나 영토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차이로 인해 결국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지곤 했다.

특히 ▦동예루살렘의 지위 문제 ▦이스라엘 정착촌 처리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 등이 합의 이행을 막는 핵심 쟁점이다.

Q. 유대인 정착촌이란?

A.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과 가지 지구 등에 유사시에는 ‘전진기지’역할을 할 수 있는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왔다.

팔레스타인측은 점령지 전부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슬라엘은 정착촌을 자신의 관할 하에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팔레스타인측이 이슬람교 성지인 동예루살렘을 향후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반면 이스라엘은 ‘통곡의 벽’이 있는 이 지역을 ‘분리되지 않은 수도’로 남겨두겠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스라엘의 국가 성립을 전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쫓겨난 난민 처리를 두고도 이스라엘측은 무조건의 귀환권 보장과 보상을 주장하는 팔레스타인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Q. 왜 자살 테러가 계속되나.

A. 자살 테러는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 행위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저항의 최후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이스라엘 군대의 막강한 화력과 무차별 탄압에 맞설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자살 테러라는 것이다. 자살 테러에 나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미혼 청년들이지만 최근에는 기혼자와 여학생들도 자살 테러의 지하드(聖戰)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이교도 처단의 명분을 위해 순교하면 천국에서 신의 옆자리에 앉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에 따라 테러를 자원하고 있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이,가자·서안등 점령지에 유대인 이주 정착촌 건설

현재와 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토 경계는 1947년 11월 유엔 결의 181호에 의해 설정됐다.당시 유엔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분할,유대인 국가와 아랍국가를 창설하고,예루살렘은 국제 신탁통치 지역으로 만들기로 했다.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국가를 수립했으나 팔레스타인들은 이 결의안을 거부했다.

1차 중동전쟁 후 1949년 체결된 휴전안의 결과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가 처음으로 지리적 경계 단위로 정해졌다.1967년까지는 시리아가 동예루살렘을 포함해 요르단강 서안을,이집트가 가자 지구를 각각 통치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가자 지구,요르단의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시리아의 골란고원 등을 점령했다.3차 중동전의 결과였다.

이 때부터 땅과 평화를 교환한다는 원칙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 협상의 근간을 이루게 됐다.이후 이스라엘은 점령 지역에 유대인 수 십 만명을 이주시켜 수백개의 정착촌을 건설,팔레스타인과 마찰을 빚어왔다.

■중동평화협상

50여 년의 해묵은 분쟁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중동 평화 협상은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양측이 화해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93년 오슬로 협정. 당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은 미국의 중재로 비밀협상을 시작, 테러 중단과 이스라엘군의 가자ㆍ서안지구 철수 등 합의를 끌어냈다. 199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세워진 것은 이 협상의 결과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과격파가 협상안에 반대하고 라빈 총리 피살 뒤 1996년 5월 집권한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병력 철수 연기 및 유대인 정착촌 건설 강행을 선언하면서 협상 이행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조지 W 부시 정부는 출범 후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의 평화 협상 보고서와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휴전안을 토대로 여러 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자살 테러와 이스라엘의 공격이 반복돼 타결을 가로 막았다.

최근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자가 이스라엘의 철수와 아랍 국가들의 이스라엘 승인을 교환하는 평화안을 내놓아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반 이스라엘 무장단체

1964년 결성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오슬로 협정에 참여,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토대를 이루고 있지만 많은 지하 무장 단체들이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각종 테러와 게릴라전을 주도하고 있다.

1987년 인티파다(봉기)를 통해 결성된 하마스와 1980년 이란의 지원으로 조직된 이슬람 지하드는 중동 땅에서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 무장 조직. 이들 단체는 특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자살 테러 학교’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후 결성된 헤즈볼라(신의 당)는 시아파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1969년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결성한 팔레스타인인민해방민주전선(DFLP)은 왕정제 폐지 등 아랍국가의 공산 혁명 달성을 표방하고 있다.

최근의 자살 테러를 주도하고 있는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은 2000년 9월 동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에서의 유혈 충돌로 숨진 순교자 7명의 복수를 다짐하며 결성됐다. 이들의 조직 규모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지만 수십 명의 무장 투사와 자폭테러 지원자가 대기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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