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상동면 대감리. 폭 10~20㎙의 대포천을 따라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공장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냇가에 다가섰더니 놀랍게도 맑았다. 다시 산 중턱을 둘러보니 골짜기 마다 돼지, 소 사육장 등 오염원들이 깔려있어 더욱 의아했다.그러나 조장래(趙長來) 면장은 “오늘은 비온 뒤라서 물이 흐린 편입니더. 좋은 날 왔어야 할낀데”라고 도리어 아쉬워했다.≫
투명한 강바닥에는 그 흔한 이끼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 아주머니가 “명경지수가 따로 없지예”라고 말하자 또 다른 주민이 “가재도 살구요, 재첩도 잘 잡힙니더”라고 맞장구쳤다.
9㎞ 가량의 천변을 따라 공장 630개, 축사 67개, 주민 4,200여명 등 거대한 오염원을 가진 대포천이 1급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대포천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다른 도시 주변 하천이 그러하듯 이끼가 누렇게 끼고 생물체를 찾아 볼 수 없는 3~4급 수질의 ‘죽음의 강’이었다.
상류로부터 축산 농가의 오폐수가 여과 없이 방류됐으며, 1980년대부터 들어선 공장들 또한 시커먼 먹물을 쏟아냈다. 조 면장은 “피부가 근질거려 발 담그기가 겁날 정도였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97년 2월 대포천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낙동강 물금, 매리 취수장과 가까운 이 지역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는 소식이다. 성마른 일부 주민들은 투쟁위원회를 결성, 개발 제한 등 각종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상수원보호구역 철폐 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진행된 ‘대안 없는 반대운동’은 큰 효과를 볼 수가 없었다. 이때 이봉수(李鳳洙ㆍ김해시 수질개선대책위원장)씨 등 일부 주민이 “하천을 먼저 살려놓고 행정당국에 구역 지정을 유보해달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기발한 제안을 내놓았다. 즉각 반대투쟁위원회 대신 ‘대포천 수질개선대책위원회’ 간판이 새로 올려졌다.
이번에는 ‘오염 주범’으로 몰렸던 축산 농가들이 앞장섰다. 전국 최초로 축산분뇨 공공처리장을 만들어 한 방울의 오폐수라도 여과 없이 방류되는 것을 막았다. 하천 바닥에 덕지덕지 붙은 오물도 집안 청소하듯 말끔히 닦아냈다.
주부들도 가세했다. 손빨래는 기본이고 합성세제 안쓰기, 물 절약하기 등을 생활화했다. 가구 당 수질개선기금으로 월 평균 2,000~3,000원을 선뜻 내놓았다. 대포천 수질개선대책위원장 정영진(丁永振ㆍ50)씨는 “마을 농협구판장의 샴푸, 퐁퐁 등 모든 합성세제를 치워버릴 정도로 주부들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고 전했다.
하수가 흘러드는 어귀마다 미나리꽝을 조성하는 등 2중, 3중의 자연여과장치를 만들었으며 가정과 식당에는 간이침전조를 설치했다. 모든 주민들은 여러 조로 나뉘어 매주 한차례씩 대포천에 나가 정화활동을 벌였으며 조성된 수질기금 3,000만원으로 전문 감시원을 고용, 오염행위를 철저히 단속했다.
물 빛깔이 점차 투명해지자 주민들은 더욱 신이 났다. 하천에서는 사라졌던 어린 조개들이 속속 발견됐다.
그리고 11개월이 지난 98년 3월. 수질 측정결과 0.3ppm의 완벽한 1급수로 나타났다. 당시 수질개선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이씨는 “눈물겹던 주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며 “4,200명 주민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얼싸 안았다”고 회고했다.
신난 주민들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더욱 아껴쓰고, 감시했다. 이듬해 이씨 등 주민 대표들은 환경부를 찾아가 ‘1급수 보고서’를 당당하게 내밀며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유예 등을 담은 ‘수질계약제’를 제안했으며 환경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냈다.
그러나 주민들의 숙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1급수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정부는 언제든지 이 지역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질 개선으로 물고기도 돌아왔지만 향락객도 함께 찾아왔다.
김해시 관계자는 “부산에서 20~30분 거리에 불과해 여름이면 하루에도 수백명씩 대포천을 찾고 있다”며 “또 오폐수 배출 공장은 제한 받고 있지만 일반 사업장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혀 대포천의 험난한 미래를 예고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이봉수 초대 수질개선대책위원장 "이젠 향락객이 문제"
“이제부터가 더 큰 문제입니다. 대포천이 맑아졌다니까 여기저기서 향락객이 몰려들더군요.”
초대 수질개선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대포천 기적’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이봉수(李鳳洙ㆍ47ㆍ사진ㆍ김해시 수질개선협의회장)씨는 “수질은 개선도 어렵지만 유지가 더욱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대포천 수질을 위협하는 가장 큰 오염원은 바로 부산 등 대도시에서 놀러 온 향락객입니다.” 그는 “이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쓰레기가 널려있고 강에는 닭백숙 찌꺼기까지 둥둥 떠내려가곤 했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토박이 이씨에 따르면 대포천은 70년대만 해도 아이들이 멱을 감고 가재와 재첩을 잡던 전형적인 시골 하천. 그러나 축산 장려 정책으로 소ㆍ돼지 축산 농가가 급증하면서 물 빛깔이 달라졌으며 80~90년대 공장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아예 접근 못할 ‘죽음의 하천’이 돼버렸다.
이씨는 “절수 생활화 등 주민들의 땀이 끝내 과거의 하천 모습으로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며 “이는 하늘이 내린 기적이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오염된 하천이라도 주민이 일치 단결 노력하면 충분히 맑은 물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게 이씨의 일관된 생각이다.
“대포천 주민 뿐만 아니라 지역을 찾는 모든 외지인들이 함께 노력해야 청정하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는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유보가 결국 대포천을 살린 것처럼 오염 하천 주민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수질 개선을 유도하면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포천을 되살린 경험을 바탕으로 김해시 5개 하천의 수질개선협의회를 이끄는 등 어엿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환경 보전은 국민 모두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해=강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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