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조계종 제11대 종정에 추대된 법전(法傳ㆍ77) 신임 종정이 2일 자신의 거처인 해인사 퇴설당(堆雪堂) 뜰 앞에서 추대 뒤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올곧은 수행자세로 ‘절구통 수좌’로 불리기도 했던 법전 종정은 정통 선승의 맥을 이어온 그의 삶이 그러했듯이 수행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해인사 퇴설당의 단상에 앉은 법전 종정은 종단의 가장 큰 어른이면서도 수행암자에서만 생활했던 과거 이력을 보여주듯 속세에서 찾아온 낯선 이들에게 낮가림을 하는 천진무구한 모습이었다.
그는 기자회견 도중 간간이 “산골의 중이 무엇을 알겠는가”라며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_먼저 종정 추대를 축하드립니다. 종정 추대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원로회의에서 추대된 이튿날(3월27일) 하례를 겸한 법회에서 덕담삼아 개명불개체(改名不改體)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본바탕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름이 하나 더 붙었다고 해서 이 산승(山僧)이 뭐가 달라진 게 있겠습니까. 옛말에 지인무명(至人無名)이라고 했습니다. 지극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위와 이름이 없습니다. 출가인에게 이름과 지위는 따지고 보면 자기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그래도 현상계에서는 분명 다른 것이 있으니 종정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_종단 운영방침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지계청정(持戒淸淨) 견성성불(見性成佛) 중생교화(衆生敎化)’를 종단운영의 기본방침으로 정했습니다. 지계는 자기를 맑히고 종단을 청정케 하는 근본입니다. 수행인이 맑고 깨끗한 정신을 가지고 있고 교단이 청정할 때 모든 사람들의 귀의처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올바로 수행해야 맑은 지혜가 나옵니다. 똥 담은 바가지에 아무리 맑은 물을 붓더라도 똥물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반드시 지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_2년여간 원로회의 의장을 지내셨는데, 조계종단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화합이 있어야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종단 내 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습니다. 또 (종단의) 교육 수준을 일정 단계로 올려나갈 겁니다. 교육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_종단의 대표적 선사로서 일평생 수행에만 전념하셨는데, 그동안의 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에서는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이 바로 부처입니다. 다만 불가의 사람들은 수행 후 중생교화(衆生敎化)에 나서야 합니다. 저는 아미타불이 만든 극락세계도 원치 않고 하느님이 만든 천당도 원치 않습니다. 내가 깨우치면 보는 것마다 아미타불이요, 가는 곳마다 극락입니다. 내 손으로 만든 극락세계에서 살고 싶습니다.”
_종정께서는 화합을 강조하셨는데, 최근 종단의 현안이 되고 있는 94, 98년 종단 분규로 인한 멸빈자(승적이 박탈된 자) 사면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멸빈 문제가 종단의 현안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멸빈도 종헌, 종법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중앙종회, 총무원, 호계원, 원로회의 등 종단의 입법ㆍ행정 기관의 적법한 절차를 통해 처리할 것입니다. 사면 문제가 종단의 화합을 저해하는 길로는 가지 않겠습니다. 한쪽 말만 듣고 종단의 화합을 깨지는 않겠습니다.”
_올해에는 월드컵, 지방선거, 대선 등 국운이 달린 국가적 대사가 많이 있습니다. 종정께서는 어떤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산승인 제가 정치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국민의 눈이 있는데 내가 얘기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다녀갔는데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들이) 비관적 소리만 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올해 있을 큰 일들을 반드시 성공해서 선진국에 진입할 것을 확신합니다.”
_올해로 통합종단이 출범한 지 40주년이 됐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불교를 좀 더 알리기 위한 포교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금 불교의 교세가 기운 것은) 스님들이 수행을 잘 못 하는 데서 초래된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지원을 받는다든가 외부에 포교를 잘 해야 (불교 중흥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인격을 갖춘 스님들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조만간 훌륭한 스님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_지난해 청동대불 건립 발표로 해인사가 환경문제를 등한시했다는 여론의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문제 해결 과정에서 불미스런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종정께서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실 예정이고, 또 의견이나 신념이 달라 충돌이 생길 때 불가(佛家)의 일 처리 방식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해인사 주지 스님이 (청동대불 조성에 대해) 묻기에 전문가에게 의견을 듣고 일처리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청동대불 조성을 놓고 일부 과격한 언동이 있었으나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한번 실수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라고 하지 않습니까. 불가의 일처리 방식 역시 속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부처의 율문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수 의견을 존중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_종정께서는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고 오십 하안거를 달성하는 등 수행의 경지가 높으신 분입니다.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올바른 수행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해 중생을 교화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이 깨달음을 얻으면 중생과 내가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그때 진정한 중생교화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_재가 신자를 포함한 국민에게 한 마디 해주십시오.
“산승이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부처님 동체대비(同體大悲) 사상의 실천입니다. 동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 그리고 세계가 한 식구라는 믿음으로 서로 믿고 돕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부처님같이 존엄시하는 대비심을 길러야 합니다.”
▼왜 땅을 가리켰을까? 기자단에 화두▼
인터뷰 말미에 법전 종정은 “멀리서 오신 분들게 선물을 하나 주겠다”며 중국 송나라 투자(投子義淸) 스님의 일화를 들려줬다.
“중국 송나라때 투자 스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산골에서 깨 농사로 기름을 짜 생활을 유지했던 분입니다. 기름때 묻은 옷 때문에 수행자로 보이지 않았으나 법문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어느날 송나라의 유명한 선사(禪師)인 조주 스님이 투자 스님을 찾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는 어떻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투자 스님은 ‘날이 밝거든 가고 어둡거든 행하지 말라’고 답했습니다. 또 어느날은 수행자가 투자 스님의 뜰방에 찾아오자 투자 스님이 ‘그대는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수행자가 ‘칼 산에서부터 온다’고 답했습니다. 투자 스님이 ‘그러면 칼을 가져왔느냐’고 묻자 수행자는 땅을 가리켰습니다. 왜 땅을 가리켰습니까? 여러분이 대답해보십시오.”
기자단이 침묵하자, 법전 종정은 “아무도 얘기 않네. 한번 얘기해봐요”라고 말하고는 한참 있다가 “억!”하고 일갈(一喝)했다. 법전 종정의 수좌들은 “땅을 가리키는 것 자체는 하나의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간화선(看話禪)적 수행방법”이라고 해석해줬다.법전 종정은 기자는 예리한 지혜를 갖춰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선물로 준 것이다.
해인사=김영화기자
yaaho@hk.co.kr
■가장 좋아하는 시
寒山子 長如是
獨自法 不生死
한산자는 항상 변함이 없어서
홀로 스스로 가고 생사가 없다.
-당나라 은자(隱子) 한산(寒山)지음
■걸어온길
▲1925년 전남 함평 출생
▲1939년 전남 영광 불갑사에서 출가
▲1949년 성철 스님의 봉암사 결사에 참여
▲1951년 성철스님으로부터 인가
▲이후 창원 성주사,문경 갈평토굴,태백산 도솔암,문경 대승사 윤필암·묘적암,김용사 금선대,범어사,해인사 등 선원에서 참선수행
▲1967년 해인총림 유나(維那)
▲1981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1984년 조계종 총무원장
▲1986년 조계종 호계위원장,해인사 주지
▲1996년 해인사 방장(현),성철스님 문도회 회주
▲2000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2002년 3우러 조계종 제11대 종정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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