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4월2일 프랑스의 정치가 조르주 퐁피두가 작고했다. 향년 63세. 퐁피두는 프랑스 제5공화국의 두번째 대통령이다.1969년 드골의 뒤를 이어 엘리제궁의 주인이 된 그는 7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그 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를 국가 수반으로 뽑았고, 이 달 21일과 5월5일에 5년 임기의 새 대통령을 뽑는다.
드골 아래서 네 차례나 총리를 지낸 퐁피두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드골의 자주외교 노선을 견지했다.
그러나 그는 드골처럼 노골적으로 반미 노선을 천명하지는 않았다. 미국과의 협조를 통해서 서유럽에서 프랑스의 고립을 막는 한편, 프랑스-소련 협력성명을 통해 동유럽 공산권과의 우호도 증진했다.
1971년 10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파리를 방문해 퐁피두와 공동으로 발표한 프랑스-소련 협력성명은 유럽의 기존 국경 존중, 핵군축 노력, 내정불간섭, 경제ㆍ기술ㆍ산업 협력 등 13개 항목으로 돼 있다.
퐁피두는 말하자면 냉전의 주역인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다.
재임기간이 길지 않았던 터라, 퐁피두는 드골이나 미테랑 만큼 프랑스나 유럽의 현대사에 큰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1977년 문을 연 퐁피두 센터 덕분에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귀에도 익숙하다.
정식 이름이 조르주 퐁피두 국립 예술 문화 센터인 퐁피두 센터는 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공업창작센터 등을 아우르는 종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철골이 외곽으로 드러나 언뜻 보면 미완성의 이미지를 주는 이 독특한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이탈리아인 피아노와 영국인 로저스다. 퐁피두 센터는 그 건물이 들어선 파리의 구역 이름을 따 보부르라고도 불린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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