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의무화하는 판매가격표시제가 허울 뿐인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패션몰이나 재래시장에서 정부 방침에 부응해 앞 다퉈 가격표시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가격표는 전시용(?)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동대문 패션몰 두타가 3월부터 판매가격표시제를 자율 도입한데 이어 프레야타운, 메사는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며 밀리오레도 8일부터 가격표시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남대문과 동대문 및 이태원 재래시장, 그리고 용산전자상가 등도 정부의 5월 가격표시제 의무화 방침에 따라 통일된 가격표 제작 등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요란한 홍보와 달리 내용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제도 시행 1개월째를 맞은 두타의 의류 매장. 5만4,000원이라고 가격이 적혀있는 남성 봄 점퍼는 현금 계산시 4만원, 신용카드 계산시 4만3,000원에 판매된다.
잡화 매장의 여성용 숄더 가방도 표시가격은 4만6,000원이지만 현금으로 계산할 경우 3만4,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제도 시행 첫 날을 맞은 프레야타운과 메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메사의 경우 대부분 품목에 가격표가 부착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표시 가격보다 20~30%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성공적인 판매가격표시제로 고객의 불신을 해소하고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확립해나가고 있다”는 회사측 설명과는 딴 판이다.
■ 제도 정착 가능할까
재래시장이나 패션몰 상인들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정책”이라고 반발한다. 패션몰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김모(37ㆍ여)씨는 “부가세를 줄이기 위해 원단 매입전표를 끊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인데 매출 자료만 노출될 경우 상인들은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 유통 과정의 불법 고리를 끊지 않는 한 판매가격표시제 정착은 요원하다는 얘기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매입 자료’를 별도의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밖에 내ㆍ외국인에 대한 판매가격이 2~3배 가량 차이가 나는 현실, 재래시장의 매력을 흥정행위에서 찾는 고객 심리 등도 가격표시제 정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와 업계는 제도 정착을 위해 앞으로 강력한 단속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시 단속이 이뤄지고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면 조기에 제도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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