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고갯길을 허덕이면서 / 아, 참아야 한다기에 / 눈물로 보냅니다 / 여자의 일생’ 이라는 노래가 한참 유행할 적이다.어느 자리에서 ‘참된 여인상이란’ 제목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내 한살매(일생)에 큰 힘이 되었던 작품은 막심 고리끼의 소설 ‘어머니’였다고 하자 어느 재야인사가 딴지를 걸어왔다.
“백선생, 그것은 한 권력의지가 조작한 여인상 아니요? 진짜 문학을 예들어야지.”
나는 깜짝 놀랐다.
고리끼의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의 소산을 권력의지의 조작이라니….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문학논쟁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작품과 연관된 내 지난날이 떠올라 계절을 앓듯이 속으로 적시는 수 밖에 없었다.
1980년초 전두환 일당에게 잡혀가 매를 맞을 적이다.
쓰러졌다가 열시간만에 겨우 깨어나 보니 나는 겁이 더럭 났다. 이어지는 그 참혹한 매질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먼저 죽는다면 수십년동안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내 옛살라비(고향) 어머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두려움이 닥쳐왔기 때문이었지만 어떻게 하랴.
내 힘으로는 눈자위도 깜빡일 수가 없는 상황이니.
이때 언뜻 막심 고리끼의 작품 ‘어머니’가 떠올랐다.
탄압과 노동에 좌절하고 희망에 좌절하고 그리하여 술과 행패만 일삼는 남편을 여의었지만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내야만 했던 그 여인.
하지만 똑뜨름(역시) 노동자인 아들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내일을 만나면서 마침내 역사의 현장에 나서 제정 러시아 타도의 전단을 뿌리다가 잡혀가면서 이런 말을 한다.
“아무 것도 두려워 마시오. 여러분이 입때껏 살아오며 겪고있는 그 고통보다 더한 고통은 없습니다.”
이 말은 고리끼 소설의 주인공의 말이자 바로 내 어머니의 말씀으로 들려와 그 끔직한 인간 막장, 사람 잡는 도살장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던 생각이 난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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