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그것도 3·1절이 되면 친일문제가 불거져 나온다.금년에는 국회의원들이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고 일부 언론사주의 친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부쩍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사는 곧 대선이니 권력형 비리니 하는 문제로 쏠린다.
친일문제는 언론이나 정치권의 지속적이고 주된 관심사는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확실해졌다.
명단 발표에 대한 어느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은 과거 일이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쪽이 66%, 과거 일을 들춰 나라를 시끄럽게 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28%였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친일문제가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기는 역시 어려운 모양이다.
아마 8·15 광복절이 되면 으레 다시 불거져 나올 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친일문제는 3월과 8월에만 잠시 반짝하는 통과의례적인 문제인 것일까?
나치 전범의 자식 중에는 당당하게 자신의 부친의 신념이나 행위를 옹호하는 확신범이 있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이름은 자신이나 남이나 떳떳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지도층에 속해 있는 이들의 조상 중에는 친일 행적 문제로 시비에 말려드는 일이 왕왕 있다.
그래서인지 친일 인명사전 편찬이 여의치 않아 사전을 제대로 편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서명운동까지 해야 할 정도이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도 20세기 초반부터 일본의 침략으로 큰 고난을 겪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조금이라도 친일의 기미가 보이면 ‘조선의 이완용 같은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이완용이란 이름이 친일파의 대명사로 되어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이완용씨의 후손은 재산을 되찾겠다는 소송에서 승소했고,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법리상 문제가 없다.
백범 김구선생이 항일투쟁을 하다가 이국에서 숨진 이들의 유택터로 선택했다는 효창공원은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에 의해 온갖 이질적인 기념물과 체육시설이 잔뜩 들어 서 효창운동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친일인사가 반공투사로 변신하여 기득권을 누린 사례들도 있고, 친일파청산을 위해 만든 ‘반민특위’를 비롯한 친일 잔재 청산 시도는 좌절을 거듭해 왔다.
그렇다고 지식인과 언론의 반나치 레지스탕스가 활발했고 전쟁 후 과거청산에 철저했을 뿐 아니라 현재도 나치 부역자에 대한 처벌이 진행되고 있는 프랑스처럼 새삼스럽게 소급해서 처벌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1993년 ‘그분들의 친일행위는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며 독립유공자 중 친일 혐의자에게는 서훈을 취소하겠다는 국가보훈처를 질책해 좌절시킨 일부 국회의원들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친일문제와 관련된 역사적인 접근은 긴요하다.
3·1절 특집으로 방영된 유관순 열사 관련 프로그램에서 그 친구분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더 늦기 전에 일제통치와 관련된 역사 연구소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1운동연구소라든가 친일문제연구소 등의 설치가 시급한 까닭은 그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세대가 점차 자연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연구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사교육 현장에 대한 관심이다.
이 난을 빌어 7차 교육과정에서 한국근현대사가 중·고교에서 선택과목으로 된 것에 대한 유감을 밝힌 적이 있다.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를 폭 넓게 지원하고 교육하노라면 친일문제가 개천절이나 광복절에만 반짝하는 논란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민족은 다시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한다'는 경구에 귀기울여야 한다.
윤혜영 한신대 역사문화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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