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함성호씨는…건축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웹진 PENCIL(펜슬), 계간 ‘문학ㆍ판’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최근에 만화 비평도 하고 있는 시인은 현재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고 있다.’최근 출간된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의 책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다. 이 즐비한 약력을 두고도 함성호(39)씨는 “나는 한 우물을 팠다”고 말한다.
열심히 파다 보니 이런 ‘지층’이 나오고 또 저런 ‘지층’이 나왔다는 것이다.
함씨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우물’에 관한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릴 만하다.
입시 원서를 쓰려다가 이과 학생은 미술대학에는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과반이었던 그는 할 수 없이 미대와 비슷한 건축과(강원대)에 지원했다.
졸업하고 누나네 집에서 놀다가 지쳐서 문학 책이라는 것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읽은 것이라곤 만화가 전부였다.
화가를 꿈꾸었던 사람답게 디자인이 예쁜 책에 손이 갔다. 황지우씨의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였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간 ‘문학과사회’의 ‘촌스러운’ 표지 디자인을 보고 만만해 보여 시를 투고한 게 발표됐다.
적성에 맞았던 전공이어서 건축평론가로 또 건축설계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어렸을 적부터 만화책을 끼고 살았으니 만화 비평도 영 다른 우물을 판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함씨는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믿는 쪽이다. 그는 시를 쓰듯 건축하고 건축하듯 시를 쓴다.
“시는 개념을 언어로 옮기는 것이잖아요. 건축도 개념의 작업이거든요. ‘공중에 뜬 집을 만든다’는 개념을 갖고, 그런 분위기를 실제 공간에 옮기는 것이죠.”
함씨는 건물을 설계하듯 언어를 설계한다. 그는 집을 짓는 것처럼 시라는 조형물을 짓는다.
월급쟁이 설계사로 일하던 그는 3년 전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를 차렸다.
월드컵 경기장, 천년의 문, 봉화군청 설계 경기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시다가 지난해 경기 기상청 설계 경기에서 2등으로 당선됐다.
“상금은 적었지만 독립한 뒤 첫번째 반응이라 기뻤다.”
1월 말 출간한 만화비평서 ‘만화당 인생’은 그가 너무나 내고 싶었던 책이다. 만화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심각하게 문제를 짚기도 했다.
“80년대 언론통폐합 조치로 ‘새소년’이나 ‘어깨동무’ 같은 아동 종합교양지가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아동 만화는 위축되고 성인물이 득세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 없어서 걱정이 돼요.” 그는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앞으로 전시ㆍ공연 기획도 하고 싶고, 영화도 찍고 싶다”고 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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