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대표 권혁조 "영화는 생선… 판단 전격적이어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대표 권혁조 "영화는 생선… 판단 전격적이어야"

입력
2002.03.29 00:00
0 0

권혁조(49)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한국 대표는 세가지가 빠르다. 말, 판단 그리고 일 처리.빨라도 너무 빠르다. 성격은 얼마나 급한지. 불같이 화가 난 그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해대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서 있는 여직원.

한참 경상도 사투리로 따발총처럼 쏘아대고는 “알았어?”라고 하자 “예? 뭘요?”라고 반문한다.

그 여직원 하는 말. “하나도 안 무서워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 빠르니 생각도 빠르다. 금방 결정하고, 일단 결정되면 더 빨라진다.

오죽했으면 대우전자에서 비디오 사업을 담당하던 시절, 그의 상사가 “제발 한 박자가 아니라, 두 박자만 줄여라”고 했을까.

결재가 밀리자, 서류 들고 새벽 5시에 이사 집으로 매일 찾아갈 정도였다.

11년 동안 국내 최장수 미국 직배사 사장을 하면서 그는 한번도 자기 스타일을 버린 적이 없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면 미국식 신중함은 필요 없다. 계획이 서면 곧바로 발표해 버린다.

그는 “영화는 생선과 같다”고 말한다. 작은 것까지 계산하고, 설득하다 보면 다 상해버린다는 것이다.

또 “영화 흥행은 예측할 수는 있지만 적중은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일관성을 갖고 하느냐가 중요하다. 미국 본사는 그의 일관성을 믿고 직배사의 한국식 운영을 수용했다.

15일, 미국 직배사로는 처음 콜롬비아 트라이스타가 한국영화 ‘실미도’(감독 강우석)에 전액투자, 세계배급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믿음에서 나온다.

투자여부를 놓고 그가 망설이자 오히려 본사의 비디오 담당 사장이 “너답지 않다”며 로컬(한국지사 투자)이 아닌 본사 직접 투자를 제안했다.

할리우드 영화 사상 유례가 없는 흥행수익의 배분조건(투자사와 제작사 5대5)도 그가 얻어낸 성과다.

할리우드 전통은 투자사가 제작사와 흥행수익을 나누지 않지만 한국의 룰을 따라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는 그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잡지도 그렇다. 어차피 30%는 로컬에 할애해야만 영속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직배사가 국내 배급망 유지와 비디오시장을 위해 일년에 한 두편, 몇 억원만 투자하는데 그래가지고는 점점 커지는 한국영화시장을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먼저 저지른 것이다. 분명 다른 직배사도 따라올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콜롬비아 트라이스타사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가 있다.

1984년 대우전자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직배사의 국내 비디오판권 계약을 따냈다.

콜롬비아 트라이스타사 부사장 이름만 알고 무작정 미국으로 찾아가 편당 5,000달러에 50편을 계약했다.

일주일 예정으로 간 출장이 두 달이 될 때까지 그는 미국에 머물면서 끝을 내고야 돌아왔다.

느긋하게 원칙과 절차를 지키려던 미국 영화인들조차 그의 집념과 끈기에 항복했다.

그 사건은 이듬해 폭스사 비디오판권 계약으로 이어졌고, 1991년 그가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한국 대표를 맡는 계기가 됐다.

그는 세가지를 가장 먼저 해냈다. 미국 메이저사 비디오 국내배급, 한국영화 전액투자, 그리고 ‘쉬리’의 한국영화 최초 미국 직배.

직배사가 한국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영화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인적 자원이 고갈된 홍콩 대신 아시아 맹주가 됐다. 이제는 국내에서 경쟁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보의 공유를 통해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개발해야 한다.”

미국 직배사에 대한 배타심이나 적대감도 버려야 한다고 했다.

1998년만 해도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월트디즈니, UIP, 폭스, 워너브라더스 5개 미국 직배영화의 시장점유률이 72.4%였으나 지난해에는 47%로 준 대신 한국영화가 21.3%에서 46.1%로 늘었기 때문이다.

“대등한 관계가 됐다. 때문에 서로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야 한다. 해외시장개척에 노하우가 풍부하고, 힘이 센 직배사 만큼 좋은 파트너가 어디 있나.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