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평화의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아랍연맹 정상회담이 27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주요 아랍국 정상이 불참한 반쪽회담으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막을 올렸다.회담에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사우디 평화안 논의에서 소외된 데 불만을 표시하며 참가하지 않았고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역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개막일 불참을 통보했다. 이에 앞서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불참을 결정했으며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 모리타니아 등은 국가원수가 아닌 총리급 대표를 파견했다.
특히 아라파트의 불참 결정은 이스라엘의 물리적인 봉쇄보다는 정치적 계산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으로서는 앤터니 지니 미 중동 특사가 중재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회담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국내 정치 입지 회복은 물론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 전복을 위한 아랍 안정을 위해서도 절박하다. 샤론에게는 당장 폭력을 중지하는 것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하지만 아라파트는 휴전 자체보다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실질적인 합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 같은 명분을 충족하지 않는 한 협상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고민거리만 해소할 뿐 팔레스타인에게는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이다.
더욱이 샤론이 제시한 국경선 타협안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캠프 데이비드 회담의 이스라엘안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팔레스타인 민심을 잠재우기 어렵다. 25일 밤 재개키로 했던 휴전 협상을 팔레스타인 정부가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이날 회담장에서는 위성 중계될 예정이던 아라파트 수반의 연설이 레바논 당국의 저지로 무산되면서 팔레스타인 대표단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왕세자는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1967년 점령 영토에서 전면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승인하면 아랍권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며 중동평화안을 공식 제안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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