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는 금과옥조처럼 여겨는 불문율이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삶에 교훈이 되는 내용도 적지 않다.1999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의 투수를 끝으로 은퇴한 선동열(40)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이 야구의 불문율을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재해석, 소개하는 칼럼을 격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두 사람이 똑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종의 사업을 시작했다. 한쪽은 욕심내지 않고 분수에 맞게 영업을 해 번창했고 다른 한쪽은 처음엔 잘 된다고 들떠 과욕을 부리다가 문을 닫고 말았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강한 사람, 빠른 사람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야구에서 욕심만큼 큰 적은 없다고 설파한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감독의 말이다. 현역시절을 돌이켜보면 마음이 앞서 경기를 망친 경우를 많이 봤다.
야구에는 교본에도, 규칙집에도 없는 불문율이 있다. ‘무사나 2사후 2루타성 타구를 치고 절대로 3루까지 뛰지말라’는 것도 경험법칙에 의한 불문율이다.
주자가 무사 2루에 있으나 3루에 있으나 득점 확률은 엇비슷하다. 무사 2루에서 진루타 2개가 이어지거나 진루타 다음에 희생플라이를 치면 점수를 낼 수 있다.
그럼에도 2루타성 안타를 치고도 3루까지 내달리고 싶은 게 타자의 심리이다. 특히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젊은 선수나 발빠른 주자들은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사후 2루타성 안타를 때리고 3루까지 내달리다가 아웃돼 득점찬스를 무산시키는 행위는 더욱 나쁘다. 9회말 2사 동점상황이나 1점차로 리드를 당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1점차 승부에서 타자가 2루타성 안타를 쳤다. 2사후 주자가 2루에 있으나 3루에 있으나 똑같다. 2사후에는 주자들이 타격음과 함께 홈까지 파고들기 때문에 안타 하나면 점수를 올리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3루까지 진루하면 상대의 실책으로도 점수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처럼 달리곤 한다. 순간의 욕심을 절제하지 못한 타자는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차는 떠난 상황이다.
이런 시도가 성공했다고 해도 타자를 칭찬하는 감독은 거의 없다. 팬들이 보기에는 잘했는지 몰라도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한 감독들은 무리한 플레이를 한 선수를 나무라는 게 일반적이다.
이같은 무한질주가 가져다 주는 파급효과는 크다. 잔뜩 고조됐던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아쉬운 장면이 눈에 아른거려 동료들도 경기에 집중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야구가 멘탈스포츠인 이유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비단 야구에 한정된 말은 아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아는 자(천재파), 배워서 아는 자(학습파), 노력해서 아는자(노력파)가 있다고 한다.
목표가 이뤄지면 어느 부류이든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배워서 아는 자가 천재파를 흉내내거나, 노력해서 아는 자가 학습파와 천재파를 추종하려 욕심을 내면 무리가 따른다.
메이저리그의 20세기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나는 관중을 위해 오버액션을 하지 않으려 했다. 좌익수 자리를 지키고 공을 치는 것만으로 급료를 받았다.
인기 컨테스트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나는 욕심을 부려 오버액션하지 않았다. 내 직분에 맞게 일을 하는 것으로 대접을 받았다.
인생은 컨테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고 바꾸면 어떨까. 있다고 과시하고, 가졌다고 휘두르고, 뜬다고 경거망동하는 짓은 모두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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