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로 잡혀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가던 흑인들은 백인을 극도로 무서워했다.난폭한 백인 노예상의 총과 채찍, 쇠사슬도 무서웠지만 특히 백인의 포도주 마시는 습관을 보면서 기겁을 했다고 한다.
노예로 끌려가는 흑인 사이에는 백인이 마시는 붉은 포도주가 흑인의 피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핏줄이나 피부색은 흔히 인종이나 민족의 상징이 된다.
피와 관련된 이야기가 가슴 아프고도 감동적으로 전해지는 미국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 있다.
‘To Sir With Love’라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 문제아 투성이인 고등학교에 흑인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교사로 전근을 간다. 백인 학생들은 흑인 교사를 깔보고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흑인으로서 소외의 쓰라림을 잘 이해하고 있는 교사는 깊은 인내심으로 소외계층 출신의 반항적 학생들을 지도한다.
사건이 발생해 교사가 다치고 피를 흘리자, 한 학생이 “흑인의 피도 빨갛구나”라고 무심코 말한다.
그러자 교사를 따르던 여학생이 그 학생의 편견을 나무라며 마구 대드는 일화가 인상적인, 해피엔딩의 영화다.
■ 25일의 74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흑인배우들의 잔치였다.
덴절 워싱턴이 시드니 포이티어에 이어 두 번째 흑인배우로 남우주연상을, 할 베리가 이 상 최초의 흑인배우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다.
또 흑인인 우피 골드버그가 사회를 보았고, 포이티어가 공로상까지 수상했다.
할 베리처럼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경우는 물론, 피부색이나 곱슬머리에서 조금이라도 흑인적 특징이 남아 있으면 미국에서는 흑인으로 분류된다.
그런 흑인 인구가 12%인 미국에서 흑인 배우에 대한 아카데미상의 할애는 꽤 인색했던 셈이다.
■ 수상소감은 한결같이 흑인배우로서 정체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덴절 워싱턴은 “학창 시절 세계최고의 배우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말했을 때 모두 비웃는 것 같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할 베리는 “이 순간은 앞서간 모든 유색 배우에게 바치는 순간”이라고 밝혔다. 이날은 아카데미상 역사 상 영화에서 흑백평등이 이루어진 흐믓한 날이었다.
이 경사가 혹시 9ㆍ11 테러라는 비극을 체험한 미국인이 인종과 민족에 대한 편견을 씻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된 성숙함의 결과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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