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에서 격정적인 여성성, 관능성의 언어로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시인 김선우(32)씨가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창작과비평사 발행)를 냈다.이번의 산문집은 “그 좋은 시들이 어디서 오는지 비밀을 조금 들여다보게 한다.”(시인 안도현)
김씨는 1년 전 강원 원주시 문막읍으로 이사했다. 강원도는 그가 나서 자란 곳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 가까운 부천에서 머물렀던 김씨는 어느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떠나서 문막의 한 임대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햇빛이 잘 들고 전망이 너무 좋아서” 보자마자 결정했다. 서울과 고향 강릉의 중간 지점인 문막에서 그는 책을 읽고 시와 산문을 쓴다.
단 한 권의 시집으로 그는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그에게 시와 산문은 다르지 않다.
“산문을 ‘잡글’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박또박 말하다가 김씨는 잠깐 입을 다문다.
“산문은 깊은 사색을 정갈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얼마나 귀한 글쓰기인지요.” 그는 시어를 고르듯 말을 고른다. 고른 말을 힘있게 세상으로 내보낸다.
‘도동 항구에 내립니다. 훅, 전신으로 끼쳐오는 바람. 바닷길 내내 마음의 오장육부를 드나들던 숨소리가, 징글징글하고 사무치게 뼛속을 밝히던 숨소리가 놀랍게도 일시에 화르륵 걷힙니다. 육지로부터 따라온 숨소리를 마술처럼 걷어내며 내 온몸에 가득 들어서는 바람.’
대부분의 글에서 그는 경어체를 쓴다.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 소중한 감정을 고백하는 것처럼 공을 들여 언어를 잇는다.
내밀한 개인적 체험, 고향에 대한 사랑, 따뜻하고 관능적인 여성성이 그 언어에 담겨있다.
유년 시절 ‘다시 풀 것을 알면서도 짐을 싸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배를 타고 들어간 울릉도가 자신을 얼마나 푸근하게 감싸안던지 ‘더 있으면 돌아가지 못할 것 같구나’라면서 한숨을 쉰다.
강릉 초당마을의 허난설헌 생가에서는 수백 년 전 선배 문인이 열어주는 관능의 세계를 만난다.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 따서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봐/ 한나절 혼자 부끄러웠네’
(‘연밥을 따면서(採蓮曲)’라는 난설헌의 노래에서 그는 막 속삭이기 시작한 몸의 말을 듣고 막 뿜어내기 시작한 몸의 향기를 맡는다.
첫 시집을 관통했던 여성성과 생명성은 이번 산문집에서 더욱 구체적인 것이 된다.
여성의 월경은 차고 비는 달의 순환 주기와 겹친다. 시인은 달의 리듬이 자신의 몸에 새겨져 있다는 신비로움에 뜨겁게 감동한다.
당당한 여체를 그리고 ‘세계의 기원’으로 명명한 쿠르베의 그림 앞에서 인간을 향한 물음을 확인한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라고. 모든 인간은 결국 ‘여성’이라는 기원에서 오지 않았는가.
김씨는 “시가 만들어지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가슴을 홧홧 달뜨게 하는 열기, 좀처럼 마르지 않는 축축한 습기를 산문으로 써봤다”고 했다. 그는 산문을 쓰면서 아홉수를 넘겼다.
느리게, 머뭇머뭇거리면서 풀어놓은 글을 천천히, 씹어가면서 읽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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