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정도에 따라…명경지수와 같은 심정으로 임하겠습니다.”지난해 12월11일 수사 착수 일성을 국민에 대한 약속으로 대신했던 차정일(車正一·60) 특별검사는 25일 장장 105일에 걸친 수사를 끝내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며 약속을 어기지 않았음에 만족해 했다.
매일 오전 8시30분에 정확히 출근, ‘칸트’라는 별명을 얻은 차 특검은 전날 밤 늦게까지 이상수(李相樹·46)·김원중(金元中·45) 특검보와 함께 발표문안을 최종 점검하는 등 깔끔한 마무리를 준비했다.
○…차 특검과 특검보 2명, 특별수사관 16명 및 파견공무원 19명 등 총 54명으로 구성된 특검팀은 수사 기간은 물론, ▦조사 연인원 450명 ▦수사기록 3만5,000여쪽 ▦압수수색영장 집행 47건 ▦예산 사용액 16억1,000여만원 등 수치상으로도 앞서 두차례의 특검팀을 압도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이용호(李容湖)씨와 관련, 5건을 추가 기소하고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를 비롯한 9명을 구속기소했으며 김봉호(金琫鎬) 전 의원등 3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김홍업(金弘業)씨의 측근 김 성환(金盛煥)씨에 대한 내사사건 등 10건의 범죄사실을 검찰에 통보했다.
○…민감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특유의 사투리로 “좀 봐주이소”를 연발, ‘봐 주이소 특검보’별명을 얻은 대변인 역의 이상수 특검보도 “또다른 의혹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홀가분해 했다.
그러나 검찰관련 의혹을 담당했던 김원중 특검보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송해은·우병우·윤대진 파견검사들은 특검수사의 절반이상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사팀의 막내이자 홍일점인 이영희 변호사는 “수사결과도 좋게 나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정생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계좌추적팀 및 용의자 검거반 등의 노력도 평가 받았다. 내내 밤을 지샌 이들로 인해 인근 24시간 목욕탕, 편의점, 식당 등이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이들은 이날자로 각각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 현업으로 복귀했다.
○…차 특검팀에 대한 국민들의 성원도 전례없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배달된 위문품만 해도 홍삼, 떡, 생선회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광주의 한 시민은 편지봉투 속에 성원과 격려의 문구와 함께 2만원을 동봉해 팀원들을 감동시켰다.
반면, 모 검찰 간부가 특검팀에 전화해 “왜 내 이름이 나오느냐”고 격렬하게 항의하기도 하는 등 이해당사자들의 직ㆍ간접적인 반발과 문의도 잇따라 특검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특검수사 한계
차정일 특검팀의 칼날은 매세웠지만 특검법 자체의 문제점 등으로 끝내 이용호 게이트를 완전해부하지는 못했다.
특검팀의 수사상 한계는 특검제 도입배경이 된 이용호씨에 대한 검찰 고위간부의 비호의혹과 이씨의 정ㆍ관계 로비여부를 다시 검찰로 넘겼다는데 있다.
특검팀은 고군분투 끝에 이형택(李亨澤)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와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재단 이사 등 몇몇 실세의 개인 비리에는 접근했음에도 이들을 둘러싼 권력기관의 조직적 비호내지는 개입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국정원까지 이어진 보물발굴사업과 2000년 서울지검 및 지난해 대검 수사팀의 부실수사 계기는 풀리지 않고 있다.
금품 등 대가성이 드러나지 않은 이상 부인으로 일관하는 정ㆍ관계 인사에 대한 추궁이 힘들다는 게이트 수사의 한계가 반복된 것이다.
수사상 한계와 관련 차 특검은 25일 특검제의 문제조항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차 특검은 우선 해묵은 숙제인 수사범위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특검은 향후 특검법 제정시에는 ‘이와 유사하거나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는 사건’이라는 규정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수사과정에서 파생되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특별수사관의 권한이 지나치게 제한돼 있어 피의자 조사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행법이 검사의 피의자 신문 때 참여할 수 있는 공무원을 검찰청 직원으로 한정하고 있어 특별수사관에 의한 검찰간부 수사 등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차 특검은 10일로 규정돼온 수사준비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내실 있는 수사가 어렵다며 앞으로는 최소 한달간의 준비기간을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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