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구의 현대미술을 배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동양의 정신과 화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왔다.”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ㆍ1904~1989)는 6년 뒤 파리에 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하면서 서구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동양의 전통 미학과 서양의 조형언어의 결합이야말로 고암이 평생 추구했던 예술의 세계였다.
4월2일부터 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응노 대나무 그림전’은 그러한 고암 예술의 근원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동백림 사건으로 서대문교도소에 2년여 투옥됐을 당시 그린 작품 등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대나무 그림 63점이 선보인다.
대나무 그림으로 대표되는 문인화의 사군자는 고암 미술의 출발점이었다.
19세에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문하로 들어가면서 그는 스승에게서 ‘죽사(竹史)’라는 아호를 받았다. “대나무처럼 항상 청청하라”는 뜻이었다.
그는 또 ‘청죽(晴竹)’ 그림으로 1924년 선전에 입선해 화가로 인정받았다.
대나무를 그리면서 터득한 필획, 그림 자체가 화가의 인격과 품성을 반영한다는 문인화의 정신은 이후 펼쳐진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의 필연적 기반이 된다.
70년대의 ‘문자추상(文字抽象)’ 80년대의 ‘군상(群像)’ 시리즈에서 나타나는 화면의 운율은 바로 댓잎을 만들어간 그의 힘찬 붓놀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시회에 선보이는 대나무 그림을 보면 또한 그의 독창적 조형 논리를 알 수 있다.
고답적인 사군자의 화풍에서 탈피해 그는 서구 현대 추상회화의 조형성을 도입한 독특한 효과를 이끌어냈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대담하고 분방한 운필, 수묵의 미세한 농담의 변화에서 느껴지는 율동과 흥취는 여느 대나무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위로도 뻗치고 좌우로도 쏠리고, 비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는 댓잎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듯한 필치가 자유자재하다.
우리 전통 문인화의 서화일치(書畵一致)의 사상도 나타난다.
1975년작 한 대나무 그림에 그는 ‘愛竹之心藝術之本(애죽지심예술지본)’, 즉 ‘대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예술의 근본’이라는 뜻의 제문을 붙이고 ‘파리의 애죽헌(愛竹軒)에서 고암 이응노’라고 제자했다.
1968년 서대문교도소 수감 중의 작품에는 그가 평생 그린 1,000여 점도 더 되는 대나무 그림 중 유일하게 새가 등장한다.
연약한 잎이 매달린 가느다란 가지 위에 쓸쓸한듯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자신의 소회를 사의(寫意)한 듯하다.
전시는 6월 15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일반 2,000원 학생 1,000원.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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