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길고도 불필요한, 개인적으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이 앞으로의 유사한 결정에도 유용한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의식있는 환자의 안락사 논쟁을 영국에 불러 일으킨 ‘미스 B’는 법원이 그에게 ‘죽을 권리’를 부여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의 변호사는 “그가 적절한 시기에 (호흡기를 떼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고등법원은 22일 전신마비 상태로 ‘미스B’로만 알려진 여성(43)이 산소호흡기를 떼게 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의학적 치료에 동의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는 만큼 죽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돼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데임 엘리자베스 버틀러-슬로스 판사는 “이 환자처럼 장애 정도가 심한 경우 삶은 죽음보다 나쁠 수 있다”며 “평화롭고 위엄 있게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 환자는 작년 초 기형인 척추 내 혈관이 터지면서 목 아래 부분이 완전히 마비됐다.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수술을 받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병원 측에 산소호흡기를 떼어달라고 요구했다. 병원 측에서는 심리학자들의 검사를 근거로 그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며 거부했고 이에 미스 B는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환자가 중요한 결정을 할 만한 정상적인 정신능력이 있느냐였다. 영국에서는 치료에 대해 환자의 동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치료를 거부할 권리도 인정된다. 다만 그러한 거부가 가능하려면 온전한 의식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병원측으로서는 그가 수십 년을 더 살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안정적인데다 재활치료를 통해 좋아질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영국 의료계는 환자의 치료 거부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의사 또는 제3자가 환자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안락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죽음에 대한 선택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찬반론이 나오고 있다. 미혼인 미스B는 자마이카 출신으로 대학을 마치고 사회복지사로 근무해 왔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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