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가고 나면 새로운 영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태조 왕건이 사라진 KBS1 대하사극 ‘제국의 아침’(토,일요일 오후 9시45분)은 또 다른 영웅을 만들어낼 채비를 하고 있다.
왕건의 뒤를 이은 혜종은 미약하고, 정종과 광종은 아직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들을 대신해 왕규(김무생)와 왕식렴(김흥기)이 먼저 ‘제국의 아침’의 카리스마로 등장했다.
17일 왕규와 왕식렴은 드디어 전면전을 시작했다. 왕규와 왕식렴은 ‘태조 왕건’에서는 2선에 있는 그저 학식이 풍부한 문신, 왕건의 사촌으로 불과했다.
그러나 ‘제국의 아침’에서 그들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 혜종과 이복동생들인 요(정종), 소(광종) 형제를 대신해 그들은 권력을 다투는 ‘제국의 아침’ 초반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5년 전 ‘용의 눈물’에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으로 최고의 파트너였던 김무생과 김흥기. 다시 한번 그 기세를 발휘하고 있다.≫
▦ 왕규(김무생)
즉위한 지 얼마되지 않은 혜종과 독대한 왕규. 신하지만 왕보다 더한 위엄이 넘친다.
‘환단고기’를 건네는 그는 “삼한이 통일됐으니 이제 보다 큰 국가의 목표가 필요해졌다”며 결의에 차 있다. 고려가 중국대륙까지 뻗어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왕규는 ‘제국의 아침’에서 이환경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많이 동원되면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김무생은 “대본을 받아보면 마치 논문을 읽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안영동 책임프로듀서나 전성홍 PD, 이환경 작가로부터 왕규라는 인물에 관해 특별히 요구받은 것은 없다.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것도 감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병약한 국왕 혜종에게 제국 건설의 꿈을 불어넣는 결의찬 표정에는 30여년 연기생활의 관록이 묻어나온다.
왕규에게 자신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표현해내고 있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에 따르면 왕규는 분명히 패자다.
태조 왕건과 혜종에게 2대에 걸쳐 국딸을 바친 그는 혜종 때에 이르러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지만, 혜종 죽음이후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몰락한다.
그러나 김무생은 “역사는 왕규를 역적으로 기록했으나, 지금 우리가 보기에도 그가 역적일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이환경 작가도 “‘왕규의 난’때문에 부정적으로 알려진 왕규를 새로운 인물로 발굴하겠다”고 했다.
‘제국의 아침’에서 창조된 왕규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를 건설하려는 이상주의자다.
왕규가 선택한 정책적 대안은 왕의 권력 독식을 막고 신료들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는 신권정치다. “왕규의 몰락은 신권의 퇴락을 의미한다”는 것이 안영동 책임프로듀서의 설명이다.
▦ 왕식렴(김흥기)
김흥기는 “어느 누가 역사에 역적으로 남고 싶었겠느냐. 왕식렴이나 왕규 모두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는 심정적 동지”라고 분석했다.
부국강병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서 거쳐 가는 길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왕식렴은 고려 왕국의 기틀을 다져가는 과정에서 강력한 왕권이 필요함을 설파하는 인물이라는 설명한다.
김흥기는 ‘용의 눈물’에서는 왕권정치를 추구하는 태종 이방원과 대립하며 신권정치를 주창하던 정도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 노선을 걷는 왕식렴이 됐다.
병약한 혜종의 즉위가 걱정스러운 까닭은 신권에 의해 왕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도전 때와의 차별성을 위한 전략이 있을 법도 하지만 “스타일보다는 원론을 중시한다.
개인의 욕심보다는 나라를 위해서 살아간 인물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만 짧게 말한다. 주어진 상황에 최대한 자신의 연기력을 집중하겠다는 말도 된다.
“첫 조회에서 신료들의 손발을 묶고 황실을 대표하는 태자들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것인데…. 그토록 두렵소이까?” 자신과 요, 소 왕자를 견제하기 위해 혜종이 내놓은 칙서를 대신 발표하는 왕규에게 맞서는 왕식렴은 삐딱해보인다.
혜종과 왕규가 권력을 잡고 있는 요즘 왕식렴은 비주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강력한 왕권의 재목으로 주목하는 요, 소 형제를 대신해 왕규와 맞선다.
공신 및 호족 등 권신이 몰락하고 정종, 광종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단계는 곧 왕식렴이 주류로 편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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