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과 여전사(女戰士)가 만나고 있다.서울 로댕갤러리(02-2259-7781)에서 22일부터 5월 5일까지 열리는 신세대미술의 대표 주자 이 불(38)의 신작 개인전은 갤러리에 상설 전시된 로댕의 고전적 조각과 이 불의 미래적 상상력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에는 세계 미술계에서 호평을 받았음에도 국내에는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이 불의 근작 7점이 선보인다.
옥외광고물을 연상시키는 대형 풍선 위에 그로테스크한 복장을 한 작가 자신의 사진을 인화한 ‘히드라’, 만화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인조인간 사이보그, SF영화에나 나올법한 기괴한 괴물의 모습을 한 ‘몬스터’ 등이다.
또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이란 작품은 이른바 1인 노래방 부스이다. 비디오 작품과 자신의 초기 퍼포먼스 작업을 보여주는 비디오도 상영된다.
이 불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대중문화적 상상력에서 차용했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대한 강한 냉소 혹은 비판의 의도를 담고 있다.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 인간을 어디로 이끌어갈지 모르는 하이테크놀로지, 또 동양이라는 경계를 넘어 세계적으로 보편화한 노래방 문화가 갖는 의미에 대한 통찰인 동시에 저항이다.
전시장에서 이 불은 “매일 아침마다 백지 한 장을 놓고 아이디어를 메모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우리가 늘 보고 느끼는 현실에서, 파격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가장 세속적이고 키치적인 것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첨단으로 꼽히는 이 불의 창조물이 탄생한다.
이 전시회와 함께 27일부터 5월 3일까지 서울 pkm갤러리(02-734-9467)에서 열리는 ‘문화적 신체 - 이 불의 드로잉’ 전은 이 불의 사고와 개념이 어떻게 구체적 프로젝트로 전개되어 가는가 하는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1997년 뉴욕 MoMA 프로젝트 갤러리 전시회에서 실제 생선과 백합이 어우러진 작품을 전시했다가 사흘 만에 생선이 썩는 악취를 이유로 작품이 철거돼 국제미술계의 논쟁을 유발했던 ‘물고기 드로잉’, 로댕갤러리 전시에 나온 여전사 히드라의 모습이 어떻게 탄생되었나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시아 여성 드로잉’ 등을 볼 수 있다.
1980년대말 기괴하고 우스꽝스런 일련의 퍼포먼스 작업으로 미술계에 등장한 이 불은 MoMA 전에 이어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받으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됐다.
올해도 북미와 유럽에서 6회의 개인전이 기획되어 있는 바쁜 작가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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