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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흑백갈등과 지역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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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흑백갈등과 지역갈등

입력
2002.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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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인 교수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아내는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남편의 얼굴이 검다’는 이유로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되었다고 고백했다.흔히 ‘유리천장’이라고 불리는 간접차별이 미국에서는 흑인이나 동양인에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흑백갈등이 앞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물음에 흑인인 남편은 긍정적이고, 백인인 아내는 부정적이었다.

남편은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다 보면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대답이었고, 아내는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세뇌당한 편견들이 너무 강하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흑인 어린이와 백인 어린이는 아주 잘 어울리는데, 어느 시점에서 친구를 단속하는 백인 부모의 개입이 시작되고, 흑인은 게으르다거나 거칠다거나 하는 훈시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흑인에 대한 경멸감과 적대감이 생겨서 흑인과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성장기에 주입된 그러한 편견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고, 자신의 경우 엄청난 노력으로 편견을 극복하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기에서 헤어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흑백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한편으로 오랫동안 차별을 받고 살아온 흑인들은 지금보다야 더 나빠지겠는가 하는 생각에 오히려 낙관적이 될 수 있고, 자신들이 백안시했던 흑인들의 교육 수준과 인구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백인들은 오히려 쫓기는 입장에서 더욱 초조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흑인 변호사는 흑백차별이 사라질 것이라며 그 근거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미국시민 중 흑인이 12%, 라틴아메리카인 12%, 동양인 등 기타 12% 정도인데, 이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조만간 합해서 50%가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급반전하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소외된 사람들일수록 차별을 받지않기 위해 보수인 척 하려 애쓰는 ‘슬픈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9·11 테러사건 이후 맹목적인 애국 분위기에는 어떻게든 주류 대열에 끼어보려는 소수 인종의 몸부림이 한몫 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소수 인종일수록 더 큰 성조기를 문 앞에 달았다는 것이다. 또 유대인과 백인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이 소수 인종의 의식과 행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간과한 분석이기도 하다.

이 같은 미국의 인종문제에 비하면 우리의 지역문제는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얼굴색이 다른 것도 아니고 체형이 다른 것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중심지가 한 곳에 고착되지 않고 여러 곳으로 이동해왔다.

따라서 지역문제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가 아닌, 나름대로의 지역색을 갖고 경쟁하는 관계 정도로 긍정적인 작용을 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다수이며 권력을 오랫동안 가져왔던 경상도 지역에서 상당 기간동안 ‘편견 만들기’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지역문제 해결의 암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필자의 경상도 친구들은 철들기 전부터 들어온 밥상머리 훈시와 크면서 구전으로 전해들은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들이 지역갈등 해결의 가장 큰 골치거리라고 이야기한다.

민주당의 광주 경선에서 지역주의를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라도의 보수세력이 자신들의 보수적인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정작 결정적인 변화는 경상도에서 일어날 수 있다.

경상도의 합리적인 사람들과 진보세력들이 지역주의를 넘어서고 진보적인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때 우리 사회는 고질적인 지역갈등과 무정책의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역 차별적인 밥상머리 훈시와 수준 낮은 유언비어를 합리적으로 바로잡아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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