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을 함께 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있다.한 쪽을 여기(餘技)로만 삼지 않아, 또 그 재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샘이 나는 사람들이다. 행복하게 두 우물을 파는 이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본다.≫
“안녕하세요, ‘책하고 놀자’의 김영합니다.” 이 목소리는 좀 시큰둥하게 들린다. 10년 넘게 사귄 친구와 1시간 넘게 얘기한 것처럼 긴장을 풀어놓는다.
소설가 김영하(34)씨가 SBS라디오 ‘책하고 놀자’의 진행을 맡은 지 6개월째다. 그는 “지금까지 해 본 일 중에 가장 쉽다”면서 유쾌하게 웃는다. 그만큼 자신과 잘 맞는다는 의미다.
박성원(47) 프로듀서는 “실수를 해도 금방 잊어버리는, 천연덕스러운 진행자”라며 “책하고 놀자라는 프로그램 이름과 꼭 어울린다. 그만큼 잘 놀면서 방송하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방송국은 3월로 끝나는 김씨의 계약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할 계획이다.
김씨는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창작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으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작가다.
지난해 2월 장편 ‘아랑은 왜’를 발표한 뒤 시나리오를 쓰던 그가 10월 이 프로그램 고정 진행자로 결정했을 때, 내심 자신은 걱정스러웠다.
“나같이 게으른 인간이 매일매일 방송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달도 안돼 그는 규칙적인 생활이 주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전거를 타고 방송국에 온다. 방송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집에 들어간다. 오후에는 다음날 방송할 책을 읽고 작품을 쓴다.
날마다 생방송을 해야 하는 탓에 긴 여행을 갈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아직까지는 단정한 삶을 기쁘게 누리는 쪽이다.
국내 작가들 중 맨 처음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3년 넘게 영화 리뷰 칼럼을 쓰는 등 그는 늘 젊고 발랄한 재기를 발휘해왔다.
막상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는 책 예찬론자가 됐다.
“책이 제일 재미있다. 남는 건 책밖에 없다”고 말한다.
방송 때문에 의무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활자가 쌓여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다시 활발하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됐다.
“작년에는 놀면서 책만 왕창 봤다. 나쁜 글을 보면 더 잘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글을 보면 이렇게 멋지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동안 탄력을 받았으니 올해는 작품을 많이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평생 방송 일을 하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했다가 그는 금세 고민한다. “나는 금방 싫증을 내는 편인데….”
그는 문학을 하면서 그 비슷한 일을 함께 하는 것은 “우울하다”고 생각한다. 문학과 방송 같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일을 함께 하는 인생은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영화 ‘리플리’의 배우 쥬드 로는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힐 정도로 분방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함께 공연한 기네스 팰트로는 그를 두고 “함께 있으면 마치 태양이 빛나는 것 같다”고 했다.
“어쨌든 소설을 쓴 뒤로 나는 참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라는 그의 장난스러운 말투는 기네스 팰트로의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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