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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가난한 나라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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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가난한 나라의 인권

입력
2002.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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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미국 대공황의 끝 무렵인 1939년에 출판되었다. 당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격인 이 작품은 강렬한 사회의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대사풍(大砂風) 피해와 대자본에 의해 농토를 잃은 농민의 생사를 넘나드는 비참한 유랑을 그린 이 걸작은 퓰리처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많은 공공도서관에서 금서가 되었다.

책 선정이 거부당하자, 미국도서관협회가 도서검열에 끈질기게 저항했고 마침내 선정을 관철시켰다. 미국 인권의 한 승리였다.

■ 그 후, 미국이 가난과 인권문제를 극복하고 인권보호국가로 거듭난 것은 축하 받을 일이다.

미 국무부가 4일 ‘나라별 인권실태 보고서’를 발표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 깃발을 나부끼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보고서 중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한국은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 등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부분과 ‘북한에서는 식량난으로 인한 굶주림, 질병 등으로 수십만에서 200만 명에 이르는 주민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는 내용이다.

■ 입맛이 쓴 것은, 보고서에 나타난 남한의 국가보안법과 북의 가난이 미국과 관련이 없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장기간 이념적 대치 속에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거기에는 미국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점이 간과된 것은 아닌가.

9ㆍ11 미국테러사건의 여파로 남한은 또다시 인권침해의 소지가 큰 테러방지법 제정을 서두르니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미국은 2차 대전 때 적국이던 독일과 일본을 원조해 성장으로 이끌었다. 그런 미국이 북한은 ‘악의 축’ 으로 몰고 있다.

■ 최근 우리 언론도 남한의 음식 쓰레기와 북한의 주식(主食) 양을 비교하는, 이해할 수 없는 보도를 했다.

행정자치부의 집계인데 남 주민이 지난 1년간 버린 음식쓰레기 양이 북 주민의 한 해 주식 소비량보다 10만톤 가량 많다는 것이다.

음식낭비를 줄이자는 계몽성 기사였을 테지만, 읽은 후의 감상은 기가 막히다.

자신의 음식쓰레기를 남의 음식 소비량과 비교하는 모멸적 발상과 무신경이 개탄스럽다. 조금 살게 되었다고 오만부터 배운 것이 아닌지.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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