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는 아마추어 배우를 대거 기용한 실험적인 영화이다.낯 모르는 남녀가 한 방에서 동거하는 ‘미술관 옆 동물원’을 선보였던 감독은 이번에는 말 못하는 77세 외할머니와 오락기에 푹 빠진 7세 서울소년 상우의 동거를 그려냈다.
소년은 휴대용 오락기에 빠져 있고, 외할머니가 손으로 찢어 밥에 얹어주는 김치를 내버릴만큼 도시적이다.
미혼모인 상우엄마가 아들을 친정엄마에게 잠시 맡기는 바람에 함께 살게 됐을 뿐 둘 사이에는 어떠한 소통의 단서도 없다.
배터리가 뭔지도 모르고, 켄터키 치킨도 모르는 외할머니를 보고 “벼엉신”이라고 몰아붙였던 소년이 “할머니 아프면 나한테 편지하라”며 눈물을 흘리기까지의 그 시간.
그 고요한 감정의 변화를 카메라는 매우 느슨하면서도 여유로운 시선으로 잡아냈다.
충북 영동에서 6개월간 촬영한 영화에는 상우(유승호)와 상우 엄마(동효희)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마추어 배우들이 출연했다.
“평생 영화관에 가 본적이 없다”는 외할머니 역의 김을분(77) 할머니는 물론 동네 아이들 철이(민경훈)와 혜연(임은경)과 동네 주민들, 그리고 툭하면 아이들을 놀래키는 미친 소(김기옥 할아버지의 소)와 돌부리 많은 언덕과 나뭇잎이 어우러져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편이 완성됐다.
카메라를 멀리서 잡아 오래 찍는 기법으로 비추는 ‘어느 시골’의 모습은 향수를 부르기에 충분하다.
늘 누추하고 냄새가 났던 그러나 돌아서면 그리워지는 외할머니 품에 안긴 듯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다.
영화를 미리 본 관객 중 눈물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많다.
영화 제목이 ‘집으로’가 아니라 ‘집으로…’인 것은 서울로 돌아간 상우의 마음 속에 새롭게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4월5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이래서 아쉽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찾을 수 없었던 일련의 조폭 영화에 비하면 ‘집으로…’는 분명 착한 영화다.
그러나 ‘집으로…’의 감동을 만드는 공식은 지극히 상업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이다.
닭을 사오면서 버스 안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는 주민이나 ‘빳데리’라는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점포 주인 등 영화에 묘사된 ‘시골 사람들’의 캐릭터는 70년대에나 존재했을 법한 설정이다.
감독은 ‘무공해’의 산골 사람을 그리고 싶었는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그런 이들이 존재하기 어려운 게 근대화된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가 그려낸 시골 풍경은 아마 재미 동포가 ‘마더랜드’쯤의 제목으로 만들면 좋을 법한 설정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막연한 동방 취미)’이 고향을 ‘재현’하는 과정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되바라진 서울 아이와 순박한 할머니라는 설정은 눈감는다 해도 말이다.
‘전원일기’에 농민보다 도시인이 애착을 보이듯, ‘집으로…’ 역시 유년의 향수라는 코드를 지극히 상업적으로 풀어냈을 뿐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작가주의 영화의 한 몫이라면 이 영화는 결코 작가주의 영화가 아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이래서 좋다
배우를 찾아 전국을 헤매던 이정향 감독.충북 영동의 어느 산길을 걷다 우연히 저 앞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할머니를 만난다.백발의 그을린 얼굴,구부정한 어깨.감독은 김을분 할머니에게서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외할머니를 보았다.
'집으로…'는 정겹고,안타깝고,가슴 뭉클하고,흐뭇하다.빛 바랜 사진같은 고향 집은 가난조차 그리움으로 되살리고,철없는 아이가 야속하다가도 말없이 투박한 손으로 전하는 할머니의 변함없는 너그러운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정향 감독은 그런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기법을 선택하는 한편 감동을 크게 하기 위해 이분법적 갈등을 극대화했다.아이와 할머니,도시와 시골정서의 대립이 상투적이고 뻔한 의도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서로 화해할 때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그래서 지금 이야기이면서도 1970년대 시골 풍경과 정서에 빠져버린 것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는 영화.'집으로…'에 대한 감동은 어쩌면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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