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국물을 먹고 산다. 밥상이 메마르면 한 술도 뜨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여인들은 국물을 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하늘과 물과 땅에서 얻는 모든 먹거리를 물 속에 우려내 맛을 우려낸다.지방 특유의 산물을 이용한 국물은 지역 섭생의 근본이기도 하다. 각 지방의 대표적인 국물을 여행한다. 삶과 인심도 함께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한마디로 섬진강은 짙푸르다. 첫째는 맑기 때문이고, 둘째는 바닥이 희기 때문이다. 호남의 거친 봉우리를 굽이굽이 돌아 강물에 떠밀려 온 하얀 모래는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너른 강바닥에 자리를 잡는다.
재첩국은 섬진강의 하얀 모래가 제공하는 국물이다. 한 그릇에 3,000~4,000원. 값과 마찬가지로 결코 화려한 음식이 아니다. 재첩과 소금과 물, 그리고 살짝 띄우는 부추가 재료의 전부이다. 너무 간단해 재첩국을 처음 만들었을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맛은 간단하지 않다. 아니, 맛을 표현하는 언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담백한 듯 하면서 느끼하고, 달면서 씁쓸하다. 뽀얀 색깔만 보면 부드럽게 넘어갈 것 같다. 그런데 뒷맛은 쉽게 식도로 넘어가지 않는다. 역한 기운이 목젖에 남는다. 섬진강의 갯모래 맛이 이럴 것이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이 맛 때문에 잰 숟가락질이 어렵다. 그러나 몇 번 참고 삼키면 안다. 그 맛이 재첩국의 으뜸 매력이라는 것을. 자극적일수록 중독성이 있는 법. 바로 그 맛에 중독성이 있다. 일부러 날을 잡아서라도 섬진강을 찾는 사람이 많은 이유이다.
간단한 것은 맛만이 아니다. 색깔도 그렇다. 아무 생각없이 보면 그냥 우윳빛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른빛이 돈다. 들여마셨던 푸른 섬진강물을 재첩이 뿜어 놓아서일까. 아니면 강물을 한 숟가락 풀었을까. 푸른 색깔은 전체에 퍼지지 않고 그릇 바닥에서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그래서 국물이 깊어보인다. 높이 반뼘 남짓한 뚝배기에 담겨있지만 손을 집어넣으면 어깨까지 쑥 들어갈 것 같다.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자라는 작은 조개이다. 큰 것은 엄지손톱, 작은 것은 팥알만하다. 바다의 염분이 녹아있는 동해안 석호에도 있다. 모래 속에 사는 것은 황갈색, 개흙에 사는 것은 검은 색이다. 바닥을 훑어 잡는다.
먼저 찬 물에 5~6시간 담가둔다. 해감과정이다. 야행성이기 때문에 밝으면 모두 죽는다. 덮어놓아야 한다. 모래를 뱉어낸 재첩을 물과 함께 솥에 넣고 섭씨 20도 정도로 데운다. 조개 입이 벌어지면 살과 껍질을 분리해 살만 넣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인다.
끓이는 시간이 맛의 비결이다. 너무 끓이면 맛과 향과 빛을 모두 잃는다. 조갯살의 쫄깃함도 사라진다. 소금으로만 간을 맞춰 뚝배기에 국물과 조갯살을 담고 부추를 썰어 띄운다.
재첩국은 맛으로만 당당하지 않다. 풍부한 영양에 약으로서의 효과까지 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에는 인체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아미노산과 그저 그런 아미노산이 있다. 음식물 속에 들어있는 좋은 아미노산의 비율을 수치화한 것이 ‘프로테인 스코어’이다.
재첩의 프로테인 스코어는 100이다. 완벽하게 인체에 이롭다. 웅담의 중요 성분 중 하나인 타우린도 들어있다. 타우린은 몸 속의 담즙산과 결합한다. 결과는 해독작용이다. 해장국으로 좋다는 이야기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간단한 재료로 만든 푸른 우윳빛 국물은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온갖 독소를 밖으로 몰아낸다. 고마운 국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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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이로운 재첩국은 맛 또한 좋다. 맛있는 국물을 마신다는 것.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권오현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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