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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한택수 시집 '말과 희망의 나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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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한택수 시집 '말과 희망의 나날 속에서'

입력
2002.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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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택수(韓澤秀)씨의 시집 ‘말과 희망의 나날 속에서’(다층 발행)를 읽었다. ‘말과 희망의 나날 속에서’는 시(詩)에 대한 시들을 모아놓고 있다.너댓 편의 시들을 빼놓으면, 이 시집에 묶인 시들은 죄다 시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시라는 말이 이토록 자주 언급되는 시집은 아마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을 것이다.

그 시들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인의 탐색이기도 하고, 시에 대한 시인의 사랑과 미움, 희망과 절망, 살가움과 무정함의 토로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요컨대 시와 시인 사이의 정분의 기록이다.

시가 산문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행 사이의 긴장이다. 시는 발화된 언어로써 의미하는 것 못지 않게 침묵으로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그래서 시인은 “꺾여진 행(行)은 아름답다/ 시의 꺾여진 행은 미처 하지 못한/ 한 마디 말을 뜻한다/ 그 침묵을 말한다”(‘또 행과 연’)고 쓴다.

시인 지망생들이 시창작 교실 첫 시간에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시는 진술이 아니라 묘사’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나는 시를 잘못 익혔을까? 나는 왜 대상의 묘사보다 내 자신의 리듬에 의존했을까? 시는 그러나 리듬이다. 물살이 흐르듯 내 마음은 새봄의 평화를 보고 있다”(‘밀레니엄 문장론’).

그렇다. 시는 대상의 묘사이자 리듬이다. 베를렌의 시편들은 시가 리듬이라는 것을, 음악이라는 것을 끝간데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가 리듬이라는 선언이 아니라 시로써 리듬을 만들어내는 구체적 실천일 것이다.

표제작 ‘말과 희망의 나날 속에서’의 첫 여섯 행은 체험에 바탕을 두고 언어 예술로서의 시의 탄생과 육화를 선언한다.

“내 삶의 처음에 모음(母音)이 있었다/ 밝고 햇볕 밝은 어느 아침, 푸르게 새들이/ 숲을 나설 때/ 자음(子音)들을 떠받치고 굴리며 그 말들은/ 초록빛 시의 언어로 태어났고 또 하나의/ 내 자신이 되었다.” 시인에게 시의 언어는 초록빛이다.

그 초록은, “저를 이 여름산처럼 마음이 울창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저 짙푸른 하늘의 얼굴을 한없이 우러르게 하옵소서// 오직 한 올 빗줄기와도 같은 시의 행을 가다듬게 하옵소서”(‘서울 광시곡ㆍ5’) 같은 구절을 보면, 시인에게 자연의 본디 빛깔인 것 같다.

시인은 이 시집에 헌정사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시에 대한 시들을 받을 이는 명확하다. 그것을 관장하는 신, 뮤즈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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