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차기 총재로 박 승(朴 昇)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이 내정됨에 따라 한국은행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3월1일 공식 취임할 박 총재 내정자는 대외적으로는 ‘외풍’을 막아 한은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여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인사적체가 심각한 조직을 쇄신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도 과열논쟁이 일고 있는 경기순환 국면에 박 내정자가 어떤 통화정책 방향으로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과제를 달성해나갈지 주목된다.
▼'박승호(號)’의 통화정책 방향
박 내정자는 경제 이론에 밝은데다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실물 경제의 ‘감’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만큼 기존 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박 내정자는 내정 발표 직후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현재 통화정책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가 개발경제론자라는 점을 들어 물가보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궤도 수정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경기가 회복 단계에 들어선 만큼 (성장 위주의) 통화정책 목표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 물가를 중시할 뜻을 비쳤다. 신임 총재의 정책 방향은 콜금리 인상 논의가 불 붙을 다음달 4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신임 총재의 과제
박 내정자는 우선 정부의 간섭 없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통화신용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은의 독립성과 위상을 한단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95년 ‘한은 독립촉구 경제학자 서명’에 참여하는 등 평소 중앙은행 독립에 대한 소신을 피력해온 인물.
그러나 일각에서는 박 내정자가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을 맡아 정부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한 점을 들어 정부에 지나치게 순응, 통화정책의 중립성이 훼손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은의 독립성을 확고히 다지는 것과 함께 박 내정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내부 개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끝까지 경합했던 유시열(柳時烈) 은행연합회장보다 박 내정자가 개혁 성향이 강하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었다”며 한은 내부 개혁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였다.
당장 팀장급 이상 과중한 인사적체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침체된 조직 분위기에 어떻게 활력을 불어나가느냐가 박 내정자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박승 韓銀총재 내정자
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는 19일 “경기가 본격 회복 단계에 들어선 만큼 통화정책의 목표도 바뀌어야 한다”며 “경기부양(성장)뿐 아니라 물가, 국제수지 등 3자가 균형적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는 성장보다는 물가안정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미로 해석돼 주목된다.
-소감은.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영광이다. 나는 스스로를 ‘영원한 한은맨’이라고 생각한다. 한은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직장이다. 당시만해도 집안이 너무 가난해 월급 많이 주는 직장을 고르다 한은에 들어오게 됐다.
게다가 한은은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도록 배려해준 고마운 직장이다.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대학에서 정년퇴임까지 하고 인생을 마무리할 나이에 다시 고향에 돌아온 셈이니 심력을 다 바쳐서 일해보겠다.”
-향후 통화정책의 운용방향은.
“아직 책임 있는 발언을 할 시점이 아니다. 현재의 금융지수도 잘 모르고 금융통화위원들의 생각이 어떤지도 잘 모른다. 다만 경기회복 단계에 들어선 만큼 정책방향을 바꿀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불황 극복, 즉 경기를 살리고 경제성장을 일구는 데만 맞춰졌던 통화정책의 목표를 성장과 물가, 국제수지의 3자가 균형적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부동산 및 증시의 과열조짐에 대해 우려가 많은데
“경기 회복기에는 다 일시적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어느 한 쪽만 보고 정책을 펴서는 안되겠지만 물가급등에는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에 대해 평소 강한 소신을 펴온 것으로 아는데.
“지금까지 일관되게 중앙은행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중앙은행은 정치로부터 초연해야 한다.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오로지 국가경제발전을 위해서만 일하는 곳이다. 단 한 달을 일하든, 1년을 일하든 임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초연한 자세로 업무에 임하겠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박승 누구인가
1961년 한국은행에 입행, 15년간 근무해 ‘영원한 한은맨’을 자처한다. 중앙대 교수로 몸담으며 경제발전론 분야의 탁월한 이론가로 이름을 날렸고, 86년 금융통화위원, 88년 대통령 경제수석에 이어 건설부 장관을 맡아 ‘주택 200만호 건설’사업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발언으로 주택가격 폭등을 유발한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작년 누구도 맡기를 꺼리는 공적자금관리위원장직을 흔쾌히 수락, 헌신적으로 일해온 공을 인정 받았다는 평. 추진력은 강하나 입이 가볍다는 평가도.
전북 김제 출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부인 권영하씨와 2남3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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