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전 국민 경선에서 재미있는 용어가 하나 등장했다. 까치밥 이다. 까치밥은 가을에 감 등 과일을 딸 때, 까치 등 날짐승이 먹으라고 몇 개를 남겨 놓는 것을 말한다.충청권이 지지기반인 이인제 후보의 압승이 확실하자 다른 후보들은 “까치밥 이라도 좀 남겨 놔 달라”고 호소하며 이삭 줍기에 나섰다.
오죽 다급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지역주의의 두터운 벽 앞에 낙담했을 후보들의 안쓰러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장대로 홍시 등을 딸 때 꼭 몇 개를 남겨 놓았던 기억이 난다. 행여라도 이마저 따 먹을라 치면 ‘인정머리 없는 놈’ 이라는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우리사회의 온정주의와 약자를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까치가 길조 였기에 이름이 까치밥 이었을 뿐 실은 자연의 섭리와 세상 사는 이치를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청자 빛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있는 몇 개의 빨간 홍시는 단풍철의 ‘마지막 잎새’ 처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 대전에서 까치밥은 노무현 후보 16.5%, 김중권 후보 6.1%, 한화갑 후보 5.8%, 정동영 후보에게 4.1%가 돌아갔다.
장대를 들고 감을 따러 나선 이인제 후보는 67.5% 라는 압도적 지지에 힘입어 누계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까치밥이 모두 합쳐 32.5% 라면 많다고 볼 수도 있다.
까치밥은 원래 몇 개만 남겨 놓는 것 이니까. 하지만 대전 경선 후 지역주의의 재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주목한다.
■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렸을 때 나왔던 ‘싹쓸이’ 라는 얘기가 까치밥 이라는 애교어린 단어로 대치 된 것은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싹쓸이’는 공세적이어서 90%이상의 득표와 전지역 석권을 가져왔지만 까치밥은 수세적으로 30% 정도의 할애를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경선은 16곳 중 이제 겨우 4곳이 끝났다. 까치밥 이라는 용어가 다른 데서도 나올지 지켜 볼 일이다. 가장 바람직 한 것은 더 이상 까치밥 운운 하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지만.
이병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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